brunch

CHAPTER 1: 중국 (1)

터프한 중국 남방항공을 타다

by 오셍

필리핀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아침 비행기를 놓칠까 긴장한 나머지 새벽 네 시에 잠이 깼다. 새벽 네 시는 무언가 염원하는 사람들만 일어나 있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목사님 스님, 그리고 귀신. 다시 자면 닭이 울고 새가 짹짹 될 때까지 부드럽고 폭신한 이불에 얼굴을 묻고 있을까 두려워 세수를 했다. 거울을 보니 흰자에 실핏줄이 적어도 한쪽 당 10개씩 선 느낌이다. 수건 3장, 속옷 3장, 양말 4장, 바지와 긴 팔 두 벌, 흰 스웨터 하나, 한국에서 공수해 온 겨울용 담요 한 장, 휴지, 물 휴지, 사진기, 여권, 여행 기록장. 이상 무.


어수선하게 준비를 마치고 길이 막힌다고 공항까지 50페소를 더해 달라는 택시기사 아저씨의 말을 쿨하게 무시한 채 6시 정각, 공항에 도착했다. 세 시간째 공항에서 표류를 했을까, 드디어 중국 남방항공에 탑승하게 되었다. 쪼~~금한 비행기여서 각 가 쪽에 두줄, 중간에 세 줄로 자리 배치가 되어있었다. 그중 나의 자리는 꽁무니 쪽 중간에서 왼쪽 통로였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쫙 달라붙어 엉덩이 골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빨간 승무원 복은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바가지로 퍼서 눈에 쏟아 붓는 느낌이다.

이 동안 여러 나라를 방문해 봤지만, 중국 항공은 나에게 커다란 어려움을 주었다. 외국인인데 외국인 같지 않은 외국인인 나.
머리에 훗가시를 엄청 넣어서 동산을 하나 올린 것 같은 승무원이 입국 서류를 가지고 다니길래 “여기한 장 주세요”라고 부탁했는데
"쏼라솰라~크어 쓰 @);♡%크어~?"
"아.. 저 중국말 못해요.."
한숨을 쉬더니 세 장 딱 던져주고 갔다. 잠시 후 그 동산아줌마가 다시 오더니 이번에는 "쏼라 쏼라 셤머?"하길래, 아, 이건 분명 음료수를 뭐로 할 거냐는 말인 것 같아 "오렌지주스 플리즈~"라고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쏼라솰라?"
아...... 뭐지.. 물컵도 고르는 건가, 오렌지주스가 여러 가지인가, 따뜻한 거나 차가운 거 물어보는 건가, 적어도 두 잔 시키라는 건가, 온갖 생각이 들면서 내 머릿속은 혼동의 도가니탕이 되었다. 내가 멍 때리고 눈만 쳐다보고 있었더니 조용히 잔을 내려놓았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머리라도 노랗게 염색하고 올 것을.. 그 동산 훗카시 아줌마가 또 다가오면 내가 한국인임을 알 수 있도록 가지고 있던 한국 책을 상위에 똭! 올려 놓고 대기 타고 있었다. 왜냐하면 다음 순서는 보지 않아도 가장 중요한 기내식이기 때문이다. 뚜벅 뚜벅, 착! 쏼라 쏼라? 뚜벅 뚜벅 촥. 쏼라 쏼라. 발걸음이 다가올수록 맥박이 빨라지고 동공이 열리는 느낌이다. 드디어 나의 차례다.
"Chickenor beef?"
“Chicken! Chicken!" 기쁨 표출을 위해 복식호흡으로 두 번 얘기했다.


비행기가 작기 때문에 앞에 텔레비전도 없고, 그렇다고 노래가 나오는 라디오가 있는 게 아니었다. 할 일 없을 때는 사람들 관찰만큼 시간 까먹기 좋은 게 없다. 내 뒤쪽에는 둘리에 나오는 희동이 닮은 애기 한 명이 엄청 큰 눈망울을 굴리며 출항부터 빽빽 울었는데, 아마 압력 차로 귀가 아파서 그런 것 같다. 그래, 빽빽 울어라, 그래야 귀에 있는 벌레가 죽는단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자 심심해진 귀라도 달랠 겸 태블릿을 꺼내 음악을 틀었다. 쇼스타코비치의 "prelude"가 나오더라. 조용히 노래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얼마 전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내가 첼로 연주해 드리면 참 좋아하셨는데.. 에이, 여행 길에 슬프지 말자! 노래를 2 cellos의 "we found love"로 바꿨다. 노래를 들으면서 주변을 둘러 보고 있었는데 뒤통수에 피부병이 있어서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난 중국 아저씨가 보였다.

내 앞에 왼편 통로에 앉으신 이 남성분은 직장인 이신지 흰색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로 약간 나온 배를 감추고 방금 손질한 것 같은 검정 구두를 신고 계셨다. 잠시 동안 일을 하시더니 지치셨는지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첩을 열어보시더라. 그 안에는 한 3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 사진으로 꽉 차 있었다. 누가 봐도 그 아저씨의 아이 같아 보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아이의 사진을 한 장씩 한 장씩 넘기시고 계셨다. 괜스레 우리 부모님 생각이 났다. 우리 부모님도 자주 앨범을 보고 우리가 나온 캠코더를 돌려 보신다고 하는데.. 어딜 가도 부모님의 마음은 하나같나 보다.


"쏼라 솰라~크어~(=★×♥츄#&÷☆=♡~다과~흐어~" 킁킁.. 이 특유의 시큼 꼬릿 한 냄새.. 북경에 도착했다.

옛날에 주걸륜이 나와 피아노 배틀로 유명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보면서 중국어도 나름 멋있다고, 간드러지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주걸륜이 아니었다. 이건 무슨... 모두 K1 격투기 코치 같은 어투를 가지고 있었다. 무셔..


동생 친구 호민 씨를 만나 북경 시내로 온 지 세 시간 밖에 안 됐는데 자꾸 중국 현지인들이 나한테 길을 물어본다.. 그것도 3 번이나. 바로 옆에 7년을 중국에서 산 ‘호민’친구가 있는데 내 눈만 직시하고 다가온다. 중국 3시간 차. 적응완료!


매거진의 이전글들어가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