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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프랑스 (5)

<우연으로 만나는 공간>

by 오셍

“헐.. 언니, 나 파리는 여러 번 와 봤는데 여긴 처음이다!”
“인셉션을 파리에서 찍은 거였어??”


이미 한 쌍의 예비 신랑 신부가 이 다리를 배경으로 웨딩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이 다리(빌 하킴 다리)에서는 에펠 탑이 정면으로 보임과 동시에 햇빛을 요리조리 반사하여 반짝이는 센느강이 한 프레임에 잡히기 때문이다.


영화 인셉션의 여주인공과 같은 포즈로. 엘리베이터 안에 거울과 거울이 투시와 반사를 연속으로하는 것처럼 생긴 다리
다리 밑에서 바라보게 된 에펠탑

“엄머, 여기 너무 예쁘다.. 야, 사진 좀 찍어봐!”
“우와, 언니 여기 에펠 탑 진짜 예쁘게 보인다. 이리로 좀 붙어봐. 셀카 찍자.”


사실 점점 추워지는 날씨 탓에 내 어깨를 미식축구 선수만큼 넓게 보이게 해서 기피하고 있던 노란 패딩을 입어야 했고, 천 길 만길 걸은 탓에 이미 얼굴은 쇠해졌지만, 카메라를 응시할 때 만큼은 최선을 다하여 볼때기와 눈 밑에 힘을 주어 웃어 보였다.


“언니, 여기로 쭉 걸어가다 보면 샹들리제 거리야! 진짜 예뻐! 파리에 왔으면 샹젤리제 거리는 꼭 걸어봐야지. 마침 에투알 개선문도 지나니까 보고 가자!”

프랑스에 여러 번 와 본 동생의 가이드에 따라 걷기로 했다.


에투알 개선문은 우리나라 숭례문처럼 차로 한 가운데 위치해 있는데 이 12층 건물 만한 키에 블록처럼 두툼한 몸체를 가진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거리가 사방으로 펼쳐지는 빛처럼 쫙 펼쳐져 있다. 개선문 밑으로는 차가 지나갈 수 있었다. 밑에서부터 개선문을 바라보니 개선문 꼭대기에는 블루베리 알갱이 만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파리의 전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선 지상에서 개선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적합한 지점을 찾아다녔다. 마침 개선문의 맞은편에 이를 바라볼 수 있게 배치된 벤치와 갈색 낙엽 가득 쌓인 공원이 있었다.

에투알 개선문 옆으로 쭈욱 이어지는 공원 (ft. 수북하게 쌓인 낙엽)
샹들리제 거리를 걷는 도중 창문 밖으로 수북하게 난 빨간 꽃이 유혹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찍어줌

“제길,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온통 커플 밖에 없잖아! 나폴레옹 오빠가 어, 말이야, 영광의 상징으로 만든 곳이지 커플들끼리 키스하라고 만든 로맨틱한 장소인 줄 아나? 앙? 앙?” 아직도 미식축구 선수 어깨처럼 보이는 노란 패딩에 야광 운동화를 신은 채 툴툴댔다.

평소에는 아무 말없이 지나갈 동생도 이번엔 비위가 상했나 보다. 아마 내가 사진 찍으려고 자리를 잡는 곳마다 뒤쪽에 와서 서는 커플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언니, 조금만 옆으로 가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왼쪽으로.”
“이렇게?”
“멈춰! 딱 거기 멈춰서 상체만 왼쪽으로 조금만 더 움직여봐.”
“이렇게?” 상체와 하체가 따로 놀아야 하는 다소 불편한 자세에 이미 심기도 사나워졌다. 하지만 동생이 그럴 이유가 있겠지.
“그 상태에서, 왼쪽 팔을 조금 들어봐.” 동생의 계속되는 미세한 자세 교정에 잠자코 시키는 대로 따라주기로 했다.
“됐다~ 이제 찍는다! 하나, 둘, 셋!”
셋과 동시에 아이폰이 ‘찰칵’ 소리를 내면서 살짝 밑으로 흔들렸다.

사진을 확인하더니 동생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 의미심장하기보다는 승리를 만끽한 웃음에 가까웠다. 아이폰에는 뒤쪽에 백허그를 하고 찍은 커플을 아주 교묘하게 가린‘나’와 ‘개선문’이 있었다.

Cheers to my sister!

커플을 가리기 전
커플을 가린 후


그리고 우리는 샹젤리제 거리로 입성했다.

“오~ 샹젤리제~ 오~ 샹젤리제~”

8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양 쪽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맛집과 쇼핑 공간이 몰려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기~~~~일고너~~~~~~얿은 길이 뻗어있었다.

사실 루이뷔통의 본점이 있기로 유명한데 흡사 아담한 성채 같이 지어진 상점이 ‘내가 제일 잘 나가’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삐까 뻔쩍한 도로를 돌아다녀도‘동해 근처에 개복 치랑 고등어랑 꽁치 같은 친구들하고 놀다가 뜬금없이 지중해로 와 생전 들도 보도 못한 괴생명체들을 연속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물고기’와 다름없어서 명품을 봐도 맛 집을 봐도 그저 낯선 공간에 불과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고시촌 포장마차 잔치 국수가 그립고 길거리 떡볶이 생각에 군침이 흐르는 게 현실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빈 손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수영아, 여기 겨울이라고 세일도 하는데 지인들 선물 여기서 좀 사갈까?”

아무리 가난한 배낭족이라 할지라도 항상 기도해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지인들을 잊을 순 없는 법이다. 마침 겨울 한정 아이템으로 파리에서만 파는 핸드크림이 있길래 바로 득 to the 템.

헐렁해진 주머니에 돈 대신 주먹 꽂아 넣고 다시 샹젤리제 거리를 나왔는데 어디서 도시에서는 절대 나지 않을 것 같은 새소리가 계속 나는 것이다. 알고 보니 어떤 50대, 비니를 쓴 통통한 아저씨가 체크무늬 바지에 손을 넣은 채 구석에 서서 병아리 소리, 입내 새, 비둘기, 산 새소리를 내면서 돈을 벌고 계셨다. 뭐 하나만 잘해도 밥벌이는 되는 도시다. 계속 바뀌는 새소리를 들으며 길게 줄이 늘어선 ‘PAUL’ 빵집에서 간단하게 빵 하나씩 집어 들고 저녁으로 먹을 바게트 빵을 산 후, 지하철을 타고 에펠탑 야경을 보고 독일로 출발하기로 했다.


지하철역으로 나와 에펠 탑을 향해 걷는데 흑형들이 다시 하나씩 다가온다. 이번에는 실오라기를 들고 오지 않고 에펠 탑 열쇠고리다. 이번 꺼는 그래도 중간을 누르면 에펠 탑 밑에서 불빛까지 나온다. 그래도 꿋꿋이 무시하고 에펠 탑의 중앙까지 왔다. 아침에는 고철에 불과했던 에펠 탑이 그 모서리를 따라 쭉 불이 켜지는데, 확실히 에펠 탑은 왜 밤에 봐야 한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왠지 더 키도 커 보이고 늠름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정작 그때 먹었던 PAUL 빵이 더 기억에 남는다.

밤에 찍은 노란 빛의 에펠 탑
버스 정류장 앞에 모나리자를 연상시키는 재미있는 광고


파리 여행 내내 우리의 주머니 속에는 4유로가 있었다. 아침에 기차역을 나서면서 지나간 빵집에 피자 빵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독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에 사 먹자고 여태까지 주머니에 꼭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게 왠 걸, 우리가 눈 독 드렸던 빵이 이미 다 팔리고 만 것이다. 게다가 8유로를 가지고 살 수 있는 다른 빵도 없었다. 고심 끝에 점보 지우개만 한 산딸기 타르트 한 조각을 사기로 했다.

원래 사고 싶었던 피자 빵
고심 끝에 결정한 하얀 산딸기 타르트


“바게트랑 크림치즈 발라서 먹고 후식으로 이 타르트를 나눠먹자..”
무슨 성냥팔이 소녀도 아니고,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상황이다.


8시에 독일로 가는 밤 기차를 예약했기 때문에 서둘러 맡겨놨던 짐을 찾아들고 기차에 올랐다. 오늘은 그래도 팔자 좋게 침대 칸을 예약했다. 사실 침대 칸이라고 큰 것도 아니고 딱 2층 침대 두 개 들어가는 크기인데 4명이서 함께 써야 할 곳이 비수기라 함께 쓰는 사람이 없어서 위 층 침대는 짐을 올려놓는 곳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앉아서 바게트 하나를 반으로 나눠서 크림치즈를 발라먹었다. 바게트 반쪽이 이렇게 든 든 할 줄이야.. 어제 스페인을 떠나기 전에 싼 값에 산 토마토가 남아서 토마토도 집어먹고 대망의 산딸기 타르트도 가루 하나, 잼 한 방울 흘리지 않게 긁어먹었다.


드디어 이 피곤한 하루가 마감되는 때이다. 마침 히터도 잘 나오고 기차 칸의 문도 잠겨서 오늘 밤은 아주 편안하게 잘 수 있겠다.

굿 나잇을 외치고 우리 기차 칸의 불을 껐다.


잠든지 2시간도 안된 것 같은데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우리 기차 칸을 마구잡이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게 왠 아닌 밤중에 홍두깨야..

‘덜컹덜컹’

“독일 경찰입니다. 문 여세요!” 강한 독일 억양의 영어로 소리를 지르니까 뇌를 전기 봉으로 찌르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