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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 독일 (1)

<영혼을 챙깁시다 in 뮌헨>

by 오셍
유럽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천국이란:
영국인이 경찰이고,
이탈리아인이 요리사고,
독일인이 정비공이며,
연인은 프랑스인이며,
모든 것이 스위스에 의해서 통제되는 곳.
지옥이란:
독일인이 경찰이고,
요리사는 영국인이고,
프랑스인이 정비공이며,
연인이 스위스인이며,
모든 것이 이탈리아에 의해 통제되는 곳.

원체 나라 자체가 ‘절약’과 ‘규율’, 그리고 ‘능률’로 다져졌기 때문에, 무언가를 잘못해서 경찰에게 걸렸는데 그게 하필 독일 사람일 경우 그 시점으로부터 남은 인생살이가 무지무지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악명 높으신 독일 경찰님께서 왜 이 누추한 배낭여행 족의 좁디좁은 침대 칸까지 직접 발걸음 하셔서 고단한 하루 속, 드디어 달콤한 휴식을 찾은 뇌에 전기충격을 놓으시냔 말이지.


“네, 무슨 일이세요?”

잠잘 때는 자유로운 몸을 선호하는 난, 상의는 갈색 히트텍 내복밖에 입지 않고 있었으므로 걸어놨던 노란 잠바로 대충 가리고 문을 열었다. 참고로 앞머리는 大짜 미장원 집게로 집어서 올리고 긴 머리칼은 돌돌 말아 묶어버렸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잠은 “초자연”적인 모습으로 자야 한다. 게다가 건조한 날씨 덕분에 자고 일어난 목소리는 세 갈래로 갈라져 언제나처럼 할아버지 귀신이 빙의된 듯했다.

“지금 독일 땅에 도착하셨습니다. 여권과 탑승권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공포영화 속 우물에서나 튀어나올 듯 한 내 모습에도 사뭇 놀라지 않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역시 베테랑인가 보다.

“물론이죠. 잠시만요..” 슬렁슬렁 내 침대로 가서 침대 뒤쪽 구석에 숨겨놨던파란 가방에서 여권 두 개와 유레일 패스 두 장을 꺼냈다.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은 일행입니까?” 여권과 티켓을 동시에 확인하며 물었다.
“네, 제 동생이에요. 이 여권이 제꺼고 흰색 커버는 동생 거예요.”
그때 수영이가 일어났다.
“언니.. 뭐야?” 아직도 졸린 눈을 비비면서 허리도 안 펴지는 침대에서 너무 얇아서 아슬아슬한 팔목으로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정말…… 수영이의 하루가 얼마나 고되었는지 알 수 있는 몰골이었다. 당사자의 사생활을 위해 나의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겠다.

“아, 우리 독일 국경 넘었다고 지금 여권이랑 검사한다고 해서.. 그냥 자.”

나는 보았다.

일어난 동생을 슬쩍 본 경찰 아저씨의 동공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어둠 속에서 봤으니 무서웠겠지. 베테랑도 어쩔 수 없던 건가.

“아, 됐습니다. 협조에 감사합니다.” 왠지 서둘러 떠나시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감사합니다~” 복도 공기에 다시 차가워진 몸을 다시 병상 같은 침대에 맡기며 샌드맨(sandman)이 다시 잠 가루를 뿌려줄 때까지 기다렸다.

오전 7시경, 독일 뮌헨에 도착했다.

“수영아, 다 도착했다고 내리래.. 빨랑 준비해..” 북쪽으로 올라와서 더 추워진 날씨 때문에 잠을 깊이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준비하라고 깨우면서도 내 영혼은 아직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언니, 이것 좀 들어봐.” 옷을 다 입고 동생이 옷 입는 것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동생이 스페인에서 샀던 과일이 들어있는 봉지를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패딩에 목도리까지 해서 꽁꽁 싸맨 후, 한 손에는 어제 먹다 남은 2L짜리 물통, 다른 한 손에는 과일 봉지, 등에는 검정 배낭 가방을 짊어지고 어기적 어기적 기차를 나와 플랫폼을 걸었다.

“언니, 이제 그거 봉지 줘, 내가 들게.”동생이 꽉 찬 아람단 가방을 등에 메고 말했다.
“아,, 응..”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나는 별 생각 없이 열심히 들고 있던 봉지를 수영이한테 넘겼다.

플랫폼을 거의 다 걸어왔을 때 즈음,
“언니, 근데 파란 앞 가방 어디 있어?”
“응.. 여기..” 하고서 앞 주머니 쪽을 봤는데 웬걸.. 노란 패딩만 보일 뿐 파란 가방은 매달려있지 않았다. 잠이 달아남과 동시에 내 영혼이 재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와 착석했다. 그 뿐이랴, 추위는 사치일 뿐, 갑자기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항상 나의 짐은 3개였기에 아무 생각 없이 오늘도 3개를 챙겼다는 수동적인 실행에 만족하면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빨리 뛰어..” 동생은 잔소리 할 시간도 부족하다는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 가방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여권과 ATM 카드와 유레일패스와 태블릿이 들은 목숨과 같은 가방이다. 다행히 그 가방은 아직도 침대 구석에 조용히 숨어있었다.
“ㅎ ㅏ.. 언니는 좀…… 혼나야 돼..”

어느 하나에 몰두하다 보면 다른 하나는 새하얗게 잊어버리는, 예를 들면 손에 지갑을 들고 비 오는 날 우산 챙기는 걸 깜빡하고 집에 올라가 우산을 들고 오면 지갑을 우산 자리에 두고 오는, 또는 커피숍에서 공부를 하다가 급하게 화장실을 가면 커피잔과 연필을 쥐고 있다던가,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동생도 더 이상 잔소리할 힘을 잃은 듯하다.

“미안하다…… 돈 찾은 기념으로 화장실 가서 좀 씻자 우리..”

동생의 백만 볼트 째림이 느껴졌지만 말도 안 되는 애교로 급 화해 모드를 성사했다.


독일 기차역 화장실 요금은 2유로로 비싼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한 번 사용한 영수증이 있으면 두 번째는 0.5유로 깎아주는 시스템이 있길래 동생은 0.5유로 싸게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분노의 양치질 + 앞머리 감기 +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기 + 화장까지 뽕을 뽑았다. Ugly Korean 소리를 듣기 딱 좋겠지만 돈은 없고 사진 찍어야 되니까 꾸미고는 싶은 20대 인걸 어쩌리오. 화장실을 관리하시는 관리인이 (여자 화장실 청소부가 남자분 이셔서 살짝 놀랐지만) 친절하셔서 화장하고 있을 때 화장품 올려놓으라고 직사각형 팔레트 같은 유리도 가져다주셨다. (우리가 예술을 하는 줄 아셨나..) 아무튼 Danke Herr! (Thank you Sir = 아저씨 감사합니다)

이제 단장도 했겠다, 한껏 갈라진 입에도 오늘의 양식을 줘야 할 타임이 온 것 같다.
“수영아, 우리 기차역 나가서 먹을까 아님 여기서 먹을까?”
“글쎄.. 우선 다음 기차 티켓도 끊어야 되니까 여기서 먹을까?”

맛있는 냄새를 따라가니 기차역에 Food court 비슷한 곳이 있었다. 슬쩍 봤더니.. 세상에나 만상에나 오마이 지쟈스, 아 유 히어? 이곳은 천국이었다. 다양한 빵부터 튀김요리 구운 요리 데친 요리 삶은 요리 심지어는 김밥까지 있는 것이다!


“난 숯불 닭다리..”

역시 가격 대비 양 대비 품질 대비 닭 만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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