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16

낙산사(洛山寺)

by 빨간사과
KakaoTalk_20251104_171954307_22.jpg ( 낙산사42.8×56㎝, 안종원컬렉션 간송미술관 소장 )

- 홍련암

바위 앞에 멈춘 바다는

파도를

해안선에 풀어놓습니다


법당 마룻장을 깔고 앉은 부처가

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먼 수평선 고깃배를 저으면서

의상대 소나무는

시퍼런 벼랑 끝에 비티면서


발끝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염주 알 구르는 파도 소리

촛불처럼 타오르는 파도 소리

바위에서 출렁하는 파도 소리

열반의 심장을 뚫는 파도 소리


새벽을 뚫고 나온 붉은 해가

파도 위에 부서집니다


- 석정 안종원 컬렉션

낙산사는 강원도 양양군 동해안 절벽 위에 자리한 사찰로 한국 불교사에서 중요한 관음 성지이자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삼국유사의 낙산이대성(洛山二大聖)과 동국여지승람의 낙산사기(洛山寺記)에 따르면 신라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이 동해굴에 상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창건했다고 전한다. <낙산사>는 의상대에서 바라본 낙산사의 전경을 담고 있다.

그림 <낙산사>를 보면 화면의 반을 대각선으로 잘라 왼쪽은 낙산사를 그렸고 오른쪽은 출렁이는 바닷물로 채웠다. 그러면서 바다 위 수평선으로 Ω처럼 떠오르는 붉은 해를 중심에 두어 극적인 효과를 더했다. 절벽 위 홍련암, 울창한 소나무 숲과 관세음보살을 모신 원통보전이 묘사되었다.

사찰을 감싸는 소나무 숲은 진한 먹으로 표현되어 푸르름을 이루고, 그 사이사이 그려진 흰꽃이 만개해 계절감과 신비감을 더한다. 동해 일출, 관음 신앙을 한 화면에 집약함으로써 낙산사는 이상향적 공간으로 형상화되었다.


KakaoTalk_20251104_171713300_13.jpg ( 낙산사 부분 )

낙산사의 절경을 읊은 시로는 최립(崔岦)의 <낙산사즉사>가 있다. 관동 지방을 유람하면서 낙산사를 찾은 최립은 낙산사의 일출과 월출을 즐기고자 했으나 낙산사에 온 날 비가 내려 일출과 월출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시에서 찾을 수 있다.

樓觀海日昔聞奇 (누관해일석문기)

누각에서 바다 일출을 바라보면 기막히단 말은 전에 들었는데

月得中秋一歲期 (월득중추일세기)

한가위 둥근달 보려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하네

此地此時逢苦雨 (차지차시봉고우)

이곳에서 이 날 모진 비를 만나니

天公停我嶺東詩 (천공정아영동시)

나의 영동 시를 천공이 방해를 하려나 보다

( 간이집 고전번역원 DB )

낙산사즉사11.jpg ( 간이집 고전번역원 DB )

바닷가에 자리한 낙산사가 좋다.

길에서 길을 물으며 걸어가는 관음성지낙산사로 이어진 산책길은 참 편하다.

길이 멀거나 길지 않아서 쉽게 올라갈 수 있어서다.


2005년 4월에 일어난 큰 산불이 낙산사로 번져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전소 이후 복원불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에 앞서 지표 발굴 조사를 통해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낙산사 유구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화재 이전의 낙산사는 거의 숲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나무가 많았지만 지금도 많이 회복되었다.


해수관음상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전경이 시원하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편안한 풍경이다. 의상대는 높은 해안 절벽에 자리 잡고 있는데 동해가 아득하게 펼쳐져 있고 시퍼런 수평선이 또렷하게 보이면서 파도 소리가 절벽까지 올라온다. 바다 냄새가 섞여 있는 길을 따라 홍련암에 가면 바다와 바위와 파도와 바람 소리가 완성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진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를 보면 세상의 모든 잡음이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낙산사홍련암.jpg ( 의상대에서 본 홍련암 )

- 임호 홍만적의 시 <낙산사>

尋眞客意上樓忙 (심진객의상루망)

참 구경에 나그네 누각 오를 마음 급한데

徙倚危欄眼界長 (사의위란안계장)

위태한 난간에 기대니 눈앞이 툭 트이네

白雨過來天濶遠 (백우과래천활원)

소나기가 지난 자리라 하늘 넓게 열렸고

靑山斷處海微茫 (청산단처해미망)

청산이 끝난 곳엔 바다 아득히 펼쳐졌네

觀音窟拆千年古 (관음굴탁천년고)

관음굴은 천년 세월에 걸쳐 뚫려서 있고

義相臺高五月凉 (의상대고오월량)

드높은 저 의상대는 오월 맞아 서늘하네

向晚水風吹霧盡 (향만수풍취무진)

저물녘이라 바람 불어 안개를 몰아내니

好看朝旭湧扶桑 (호간조욱용부상)

동해의 아침 해 멋지게 구경할 수 있으리.

임호유고 홍만적11.jpg ( 인호유고, 디지털 장서각 캡처 )
( 낙산사25.7×27.5㎝, 개인 소장 )

동해의 파도 소리와 낙산사 풍경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 그림은 낙산사의 일출을 그린 것이다. 겸재 정선 특유의 개성 있는 화면구성과 세심한 필선으로 그려진 그림 왼쪽에는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임호 홍만적의 낙산사 시를 적어 넣어 그림과 잘 어우러지고 있다. 겸재 정선이 낙산사를 방문하였을 당시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겸재 정선,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