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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Oct 03. 2023

당신은 사람을 얼마나 믿나요?

신뢰에 대하여


"사람을 얼마나 믿어야 해? 꼭 믿어야 해? 난 인간이 싫어."



인간 혐오가 기본값으로 있는 친구들에게 항상 저 말을 듣는다. 그 친구들은 나를 신기해한다. 나는 항상 사람들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믿음이라는 밑바탕을 두고 관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신뢰'를 내게서 배운다고 종종 듣기도 한다.


혹자는 내가 너무 순진하다며 이유 없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왜? 굳이 나한테?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신뢰를 먼저 보여줘야 상대방이 내게 무언가를 믿고 맡기던지, 주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최소한의 신뢰 기준은 있다. 오늘은 신뢰의 기준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나는 태생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 이 사실을 최근에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알게 됐다. 나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으면, 마치 동물이 겨울잠 자듯이 깊게 굴을 파고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않는 습성이 있다. 굴 속에 있는 동안 수많은 생각을 하는데, 결론은 늘 "나는 인간이 싫어."였다. 하지만 이 결론은 나의 착각이었고, 여태까지 나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믿어왔다.


내가 신뢰를 먼저 보여준 상대방이 내 신뢰에 반하는 행동을 했거나, 도덕적 결함이 발견될 때 그 사람에 대한 큰 실망감이었다. 사람이 싫다고 착각한 이유는 그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실망으로 인한 확대 '분노'였다.




사람은 늘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뒤통수치기 마련이다. 유명한 영화 대사도 있지 않은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라고. 이 말이 정확하다. 사람은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마치 빌려준 대출금을 받는 은행처럼 맡겨둔 것마냥 행동한다. 그 이유는 인간의 유전자가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찾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분이 꽤나 나쁜 상황이다. 주는 사람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기에 계속 고갈되는 에너지로 허망함을 느낀다. 받는 사람은 왜 더 주지 않냐고, 고작 내가 너에게 이런 의미밖에 되지 않냐고 생 떼를 부리기 시작한다. 이렇듯이 신뢰를 주는 사람은 늘 허망함을 넘어 공허함을 느낀다.




그래서 몇 번의 굴파기를 통해 나만의 신뢰 기준을 만들었다. 신뢰에 횟수를 정하는 것이다. (사실 이건 본능적으로 실행하고 있던 거지만,) 신용카드의 한도처럼 신뢰의 한도라는 장치를 만들었다.


나 같은 경우는 20번으로 제한하는데, 10번은 표면적인 신뢰로 시작한다. 거짓은 아니나, 관계를 시작할 때 보여주는 아주 의례적이고 목가적인 신뢰다.


나머지 10번은 '진짜' 신뢰이다. 내 기준에서 표면적인 신뢰 10번을 통과하면, 마지막 10번은 나의 결함이나 결핍점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을 지켜본다. 나이가 어릴 때는 후자의 신뢰를 먼저 보여주니, 그걸 역린으로 삼아 나를 공격하는 이들이 많았다.




몇 번을 경험해 보니 이제는 표면적인 신뢰 10번에서 판가름이 난다. '이 사람이 정말 내 결핍 지점들을 공격할 위인인가?'의 관점으로 면밀히 관찰한다. 눈빛이 탁하거나 돌아있거나, 혹은 내 오감이 그 사람과 대화할 때 싸하다고 말해주면 가감 없이 잘라낸다.


아무리 유심히 관찰해서 1차 심사를 통과시켰다 해도 나중에 배신하는 위인들이 있다. 잘못인 줄 모르고 본인의 도덕적 결함을 내보였거나, 나와 가치관이 안 맞거나, 열등감을 보였거나 등등 앞서 말한 계속 신뢰를 보여주니, 왜 이것밖에 안되냐며 생 떼를 부리기 시작하는 위인들이다. 유독 자신이 정신 연령이 높다고 착각하고 있는 위인들이 이렇다. 이런 사람들 역시 가감 없이 잘라낸다.




나는 겉으로 보이는 성격이 굉장히 거칠다. 거의 암사자처럼 보일 정도로 주관이 확실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아주 강력하게 피력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최대한 거친 면을 둥글게 보이려고 유머라는 가면을 쓰기도 한다. 혹자는 내 가면만 보고 굉장히 가벼운 사람이라고 착각해 수많은 편견과 선입견들을 내보인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인간들과 상종하지 않는다. 내게 그런 면모를 보인다면, 그 사람과 알게 된 지 몇 년이 되었든, 깊은 관계이든 간에 가차 없이 잘라낸다. 내 인생에 필요치 않은 것들을 필터링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타인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판단하는 검증 기간이 다소 긴 편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숙명인 걸까? 늘 사람 때문에 굴 파고 들어가는 경우가 80% 이상이다. 간혹 인간 군상을 보면, 꼭 관상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상치를 벗어나지를 못하더라.


선입견을 만들고 싶지 않아도 만들어지는 아이러니한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끔은 내가 나무가 아닌데, 왜 자꾸 내게 뭘 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는 때가 있다. 이럴 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부디 그 시간만큼이라도 아무도 나를 안 건드렸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선입견의 아이러니를 생각하면서 신뢰의 기준을 잡아 본다.


"전 나무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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