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이 알 수 있는 행복에 대하여
나는 영화광이다. 거의 광인이라고 할 정도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1,500편은 본 것 같다. 누가 인생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질문한 사람이 어떤 취향인지,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를 파악한다면 장르별로 읊어줄 수 있을 정도니까.
영화도 미디어 매체이기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본인만의 주관과 가치관이 있다면,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정신이 쉽게 오염되지 않는다. 책이 있기에 영화가 탄생했고, 시나리오라는 한 권의 소설책이 있기 때문에 영화에 인생이 담긴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와서 영화는 나의 시야를 넓혀주는 중요한 철학이고, 영화관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도구이자 장소다. 오늘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나아가 이 글을 보는 독자님들이 생각해 볼만한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지 말해보고자 한다.
어떤 사람들은 행복이 굉장히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분들은 아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걸 싫어하는지, 나아가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는 분들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행복은 추상적인 개념이기에 매우 주관적인 감정이다. 어떤 사람들은 통장에 잔고가 쌓여 있는 걸 보고 행복해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명품 액세서리에, 어떤 사람들은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요리하는 그 순간에, 어떤 사람들은 미세먼지가 없는 쾌청한 날씨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순간에 행복해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하고 멋진 순간을 나는 그냥 흘려보내진 않았는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유명하고 명석한 조승연 작가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 영상은 뇌 과학자 장동선 박사와 함께 행복의 3요소를 상세하고 전문적으로 설명해 준다. 이 영상에서 아래의 세 가지가 충족될 때 인간은 큰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1. 연결성: 긍정적 관계
2. 자율성: 선택과 결정
3. 유능성: 발전가능성
이 요소를 설명하는 이론이 '자기결정성 이론'이라고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명칭만 들었을 때, 내가 나일 권리, 그러니까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호불호를 결정할 권리를 설명하는 이론이지 않을까 싶다.
연결성은 외부 상황과 타인들과의 연결감. 자율성은 말 그대로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주관. 유능성은 배움을 통해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성취감을 의미한다. 나의 경우는 세 가지 요소가 모두 충족되어야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일을 할 때의 상황을 예시로 들어보자. 내가 어느 브랜드나 캠페인의 실무 총괄일 때, 어느 정도의 권한과 선택권이 있기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리고 후배를 가르치거나, 광고주가 납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광고주를 논리적으로 설득시킬 때, 성취감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동료와의 협업을 통해 그 캠페인에 이례적인 성과를 달성했을 때, 연결감과 전우애를 느낀다.
이처럼 나는 세 가지 요소가 모두 충족되어야 높은 행복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이건 일을 할 때의 내 자아가 느끼는 행복이기에, 집에 돌아와서 평소의 내 자아는 어떤 행복에 열광할까?
놀랍게도 나는 아주 소박한 순간에 큰 행복을 느낀다. 나는 행복한 순간이 많아서 리스트로 정리해 보았다.
(앞서 말한) 심야영화관의 맨 윗줄 라인에서 나 혼자 영화를 집중해서 볼 때
속옷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을 빼고 샤워한 후, 뽀송한 이불에 누울 때
엄마의 뱃살을 만질 때
시끄럽게 춤추고 노래 부르면서 엄마를 괴롭힐 때
사람들이 거의 없는 구간에서 나 혼자 춤추면서 걷기 운동할 때
화장실 거울을 보고 춤출 때
베이스 소리가 짱짱한 전자기기로 음악 들을 때
나무가 많은 곳에서 책 읽을 때
혼자 국내 여행할 때
밖이 보이는 창가 자리에서 글 쓸 때
햇빛을 받으면서 음악 들을 때
드라이브하면서 노래를 크게 부를 때
이렇게나 많은 순간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중간에 함정이 있긴 하지만, 인생은 돌아있어야 재미있게 살 수 있다. 나는 돌아있는 내가 너무나도 좋다. 어차피 태어난 김에 살 거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순간에 더 머물다 가고 싶으니 말이다.
물론 이런 행복에는 늘 고통이 수반된다. 인생은 고통이라는 유명한 말도 있지 않은가. 돌려 생각하면, 고통이 있기에 이런 순간들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더 쉽게 말하면, 오늘의 내 고통이 있어야 내일의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 옛날 중국집 배달처럼 후불 결제를 생각해 보자.
올해 초까지만 해도 나는 고통이 하위, 행복이 상위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정의해 보니 고통에 매몰되는 나 자신을 발견했고,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며 구조만을 기다리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행복과 고통은 동일한 선상이라는 것을.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모든 순간이 풍요로워졌다.
이 글을 보는 독자님들도 행복한 순간을 나열해 보았으면 좋겠다. 인생은 길고, 죽기 직전까지 우리 모두 강강술래 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막걸리 한잔 걸치는 마음으로 잘 살다가 다른 여정을 떠나보자.
행복은 내 안에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