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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Nov 17. 2023

공황장애가 심해졌습니다.

트리거에 대하여


"숨이 쉬어지질 않아. 숨을 못 쉬겠어요."



불과 어제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어제 처음 본 남자와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제가 최근에 일어난 일 때문에 그 이후부터 술을 마시면 공황장애가 심하게 오는데요. 어제는 정말 심하게, 실신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오늘은 제 공황장애와 트리거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요새 술이 알딸딸하게 취하면 어두운 가로등을 보거나, 검정 옷을 입은 남자를 보기만 해도 과호흡을 겪습니다. 보통은 술을 아무리 마셔도 공황장애는 오지 않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저는 공황장애를 넘어 발작을 일으킵니다. 어제도 어김없이 과호흡이 올 것 같아, 화장실에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에 가려고 말하려 했는데 새로운 술병이 꺼내져 있더군요. 대화가 너무 즐거워 집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잔을 더 마시니 정신이 나가더군요. 제가 정신을 잃으면 사달이 납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 검을 옷을 입은 남자가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혹은 어두운 가로등을 보면 발작을 합니다. 정신의학용어로 '트리거(Trigger)'라고 하지요. 저는 술을 마신 상태에서 트리거가 발동되면, 몇 시간 동안 숨을 쉬질 못합니다. 숨을 쉬려고 해도 쉬어지질 않습니다. 저의 정확한 트리거 요인은 딱 세 가지입니다. 가로등, 검은 옷, 남자이지요.




숨을 쉬려고 해도 쉬어지지 않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보통은 지인들이나 친한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는 얼굴을 알아보니 정신을 차리는데요. 어제는 처음 본 분이라 그런지 정신이 들지 않더군요. 그 때문에 실신 직전까지 숨을 쉬지 못했습니다. 그분도 처음에는 저를 진정시키려고 하더군요.


제 왼손과 오른쪽 손목을 붙잡고 말한 거 같았습니다. "누가 시비를 걸었어요? 아니면 누구를 봤나요? 무슨 일이에요? 말 좀 해봐요. 정신 차려요. 곧 쓰러질 거 같으니까 정신 차려야 돼요."라고요. 그렇게 몇십 분 동안 저를 달래고 타일렀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자, 경찰과 119를 부르셨더군요.




구급차에 타서 산소호흡기를 다니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어제 만난 그분은 계속 저에게 "보호자로 같이 안 가도 정말 괜찮겠어요? 같이 갈까요?"라고 계속 되물으시더군요. 저는 그때서야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고, 키가 정말 크신 그분에게도 공포감을 느껴, 저는 애써 정말 괜찮다고 집에 가서 쉬면 진정된다고만 말하고 떠났습니다.


구급차 안에서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구급대원 분이 저를 다급하게 "숨 쉬세요! 숨을 쉬셔야 돼요! 이렇게 계속 숨을 못 쉬면 응급실 가셔야 돼요!" 이렇게 계속 옆에서 말을 하시는데도 거의 눈이 뒤집히고, 실신 직전까지 숨을 뱉지 못하던 저를 보시고는 다시 "응급실 가야 합니다! 환자 분 정신 차려야 돼요! 정신 잃으시면 더 큰일 납니다. 지금 갈 수 있는 응급실 빨리 알아봐 주세요."라고 급박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엄마한테 연락이 가니 응급실에 차마 갈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가 알면 큰일 나니까요. 하지만 이미 신고받은 경찰 분은 저희 엄마한테 전화를 하신 거 같더군요. 차라리 긴급 연락처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를 했으면, 상황이 더 심각해지지 않고 진정도 됐을 텐데 말이죠. 정말 아쉽습니다.


긴급 연락처에 저장돼 있는 친구는 저를 유일하게 진정시킬 수 있는 존재이거든요. 그 친구의 얼굴만 알아보고 칼 같이 말을 듣습니다. 아마 그 친구가 왔더라면, 바로 같이 있던 그분께 상황 설명을 하고, 저를 집에 데려갔을 텐데 말이죠. 하다 못해 그 친구 얼굴을 알아보고 진정돼서 정신을 차렸을 겁니다. 그럼 그분께도 바로 사과를 했겠지요.




저는 공황장애를 대학교 2학년 때부터 겪어왔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과호흡이  징조가 있는데요. 바로 심박수가 갑자기 올라가는 현상입니다. 저는 촘촘한 인파를 보거나,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도 사람이 많으면 과호흡이   같습니다. 많은 사람 속에 파묻혀 죽을  같은 극심한 공포를 느끼거든요.


공황장애가 올 것 같을 때 먹는 약이 있다고 합니다. 이건 운동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의학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폭력적인 남자에 대한 매우 강한 트라우마를 겪어왔기에,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에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과 동시에 심박수가 올라가고요. 누가 싸우는 소리라도 듣는다면 미친 듯이 불안해합니다.


그동안 운동이나 소리를 차단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결해 왔지만, 병원을 가지 않고 방치를 계속한다면 저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질 것 같습니다. 저는 우울증이 아닙니다. 정확히 '공황장애'입니다. 오랫동안 겪어온 터라, 치료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정신과 진료와 심리 치료에 수천만 원을 들이부어야 낫겠지요.




그럼에도 트라우마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기분 좋게 술을 마시다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발작 증세 때문에 놀라는 상대방을 위해서라도요. 저에게 왜 이런 트라우마가 찾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폭력은 그만큼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일인 거겠지요. 폭력은 사람의 육체와 정신을 모두 죽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극복해내고 싶습니다. 제 삶은 늘 투쟁하는 삶이지만, 이번 투쟁은 쉽지 않아 보이는군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제 삶은 누구의 삶도 아닌 저의 삶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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