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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Nov 18. 2023

저는 알고 있습니다.

고통과 고난에 대하여


"이 긴 밤 끝에 빛이 있으리라."



오늘 잘 돌아다녔던 명동에 인파가 몰리는 것을 보고 과호흡이 올 것 같아, 급하게 사람이 없는 곳으로 담배를 피우면서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한 번 시작된 고통은 끝을 모르고 한 없이 깊어지기만 하네요. 그럼에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고통이 끝나면 빛이 저와 함께할 것임을요. 오늘은 저의 고통과 고난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제가 불안한 상태인 걸 알기에 연애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불안한 것을 없애줄 수 있는 실질적인 존재가 남자 성별을 가진 애인인 것을 알고 있지요. 저희 집 주변에 저에게 살해 위협을 느끼게 한 50대 남성이 삽니다.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저 창문으로 금방이라도 뚫고 들어와 저를 죽일 것만 같은 공포를 맛봅니다. 샤워를 할 때도 밖에서 제 소리를 들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항상 칼이 어디 있는지 되새기지요.


그날 이후로 저는  금방이라도 살해당할  같은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떨쳐내기가 쉽지 않네요. 걱정하는 엄마를 위해 애써 괜찮다고 하지만,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술을 마실 때마다 조금의 자극에 트리거가 발동하는 것을 보면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저는 연애를 하고 싶은  아니라,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제 친구들도 저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그 친구들도 각자의 삶이 있기에 늘 제 곁을 지켜주지 못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엄마가 저를 지켜주기엔 이미 나이를 너무 많이 드셨습니다. 저는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사랑이 필요한 게 아니라 보호가 필요합니다. 늘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을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줄여줄 남자가 필요합니다. 제 공포에 질린 눈을 빠르게 진정시켜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이 고통은 제 스스로 헤쳐나가야 함을요. 하늘에 계신 그분께서 저와 함께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명동에 몰린 인파를 보고 겁에 질려 빠르게 동네 성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지하철을 타지 않고 버스를 탔는데도 수많은 차를 보고 공황장애가 올 것 같더군요. 눈을 질끈 감고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제발 살려주세요. 아버지한테 갈 때까지 정신 차리고 갈 수 있게 제발 살려주세요."




성당에 도착하자마자 불이 꺼진 본당을 보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자리로 나가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를 이 고통 속에서 꺼내 주세요. 숨을 쉬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저를 꺼내 주세요. 예수님이 저를 예뻐하셨으니 그 마음을 아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저로 인해 고통받는 친구들, 엄마, 가족, 지인들, 그리고 어제 만난 그 남자에게도 평안을 주세요."라고요. 울면서 간곡하게 기도했습니다. 성당에서 그렇게 서럽게 울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네요.


진정이 쉽게 되질 않아 거의 한 시간을 울었던 것 같습니다. 고해성사를 하고 싶었는데 미사 20분 전에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실컷 울고 나니 너무나 허기졌습니다. 아버지께서 제 뒷모습을 보고 쓰다듬어 주신 것 같았어요. 예수님의 십자가상을 보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저 박힌 대못이 저의 고통임을 알기에 더 서러워졌습니다.




이 고통은 아버지께서 주신 것일 수도 있지요. 아버지는 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라고 늘 죽지 않을 만큼의 고통을 주시더군요. 너무 늦게 간 탓으로 큰 벌을 받는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의 불완전함, 불안함이 온전히 아버지께 맡겨드려야 함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습니다.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오롯이 아버지께 드려야 함을 이제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어릴 때 보았던 예수님의 따뜻한 눈빛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빛으로 둘러싸인 예수님의 후광을 기억합니다. 후광을 보이실만큼 저를 아끼셨던 거겠지요. 저를 굉장히 예뻐하셨습니다. 먹을 것을 좋아하는 천방지축에게 초코파이로 예수님을 알게끔 하셨지요. 아버지와 예수님이 제 뒤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가끔 그 존재가 무색할 만큼 희미해지지만 항상 제 뒤에 계셨겠지요.




이 고통 끝에 빛이 있으리란 걸 잘 압니다. 이 고통 끝에 예수님과 아버지가 두 팔 벌려 저를 기다리고 있으실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명치가 막힌 듯이 너무나 아픈 이번 고통은 이겨내기 쉽지는 않겠지만, 끝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겨낼 것을 믿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예수님이 가장 아끼시는 딸이니까요.


고통에 사무치는 비명이 나올 때쯤에 이 고통이 끝나리란 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페트라이니까요. 반석처럼 늘 단단한 바위와 뿌리를 내리라고 하셨지요.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고통 끝에 가장 환한 빛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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