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트라 Nov 20. 2023

저는 지금 심연과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가장 깊고 어두운 곳, 심연에 대하여


"아버지, 저를 이 늪에서 건져주세요. 살려주세요."



저는 지금 가장 깊고 어두운 곳인 심연과 싸우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있었던 트라우마와 최근에 생긴 트리거가 동시에 발현되어, 저는 지금 가장 어두운 시간인 새벽 4시와 싸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 투쟁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 늪에 잠겨 숨을 쉬지 못하는 한 마리의 양입니다. 흔히 전쟁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사람이 늪에 잠기면 흔적도 없이 죽어버리지요. 저는 지금 이 상태입니다. 저는 지금 저의 가장 깊고 어두운 늪에 잠겨 있습니다. 심연(深淵)이라고 하지요. 저는 제 심연이자 늪과 싸우고 있습니다.


요새 성당에 가면 십자고상을 보고 울부짖습니다. 무릎을 꿇고 처절하게 하는 기도는 저를 건져 달라고, 살려달라고 합니다. 고해성사를 한지 하루도 되지 않아, 집에서 발작 증세가 찾아왔습니다. 친한 언니와 집 근처 동네에서 감자탕을 먹으며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무섭지만 안전하게 집에 잘 도착했었지요. 하지만 큰 반투명창으로 보이는 실루엣을 보며 과호흡과 동시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고통이 제가 죽어야 끝날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로 무서워서 자해 시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손목을 긋고 죽는 건 엄청난 힘과 고통이 필요하더군요. 칼을 모두 꺼내놓고 스스로 손목을 긋다가 포기했습니다. 사실 저는 미치도록 살고 싶거든요. 이 끝이 없을 것 같은 고통이,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두움 속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습니다.


저는 혼자가 아님을 알고 있는데도, 갑작스레 찾아오는 이 고통은 저에게 숨 쉴 구멍조차 내어주질 않더군요. 저는 요새 맨 정신 상태인 일상 속에서도 엄청난 공포를 느낍니다. 누군가가 나를 죽일 것 같고, 집에서조차 저 창문으로 뚫고 들어와 칼로 저를 죽일 것만 같습니다. 이 공포는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공포입니다.




그렇게 경찰관님들을 다시 보게 된 저는 어제 새벽, 지구대에서 보호를 받게 됐습니다. 제가 공황장애가 있다고 하자, 자살예방센터에서 나온 상담사 분이 계시더군요. 긴 시간 동안 상담한 후에, 최대한 빠르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정신과를 알아봐 준다고 했습니다. 오늘 중에 연락이 오겠네요.


경찰관님들은 제 주변 사람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를 좀 먹었습니다. 저와 같이 술을 마시던 언니도, 제 가장 친한 친구도, 엄마도 전화를 받지 않더군요. 할 수 없이 작은 외삼촌과 숙모에게 연락을 해보시라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숙모가 전화를 받았고, 삼촌과 사촌동생이 급하게 찾아왔습니다.




삼촌을 보자마자 저는 다시 울기 시작했습니다. 삼촌도 우시더군요. 조카딸이 이렇게 힘들어하니, 그렇게 이뻐했던 애기가 다 커서 힘들어하니 누구보다 속상해하셨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외할머니 댁에 가게 되었고, 덕분에 마음 편히 잘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할머니와 함께 저희 집에 잘 있는 상태이고요. 저희 엄마가 다음 주까지는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할머니께서 그동안 저와 함께 계셔주기로 했습니다.


저는 지금, 가장 깊은 어두움과 싸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어두운 광야에서 악마들과 싸우셨듯이 저 또한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늪에서 나오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야 아버지께서 저를 건지실 테니까요. 저는 지금 정신병원 입원까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광야에서 처절히 기도하셨듯이 저 또한 늪에서 얼굴을 비추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믿습니다.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서 아버지께서 제게 가장 환한 등불을 쥐어주실 것임을요. 가장 어두운 새벽 4시에 혼자 남겨진 저에게 횃불을 쥐어주실 것임을요.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게 나올 것임을 믿습니다.

" 끝은 창대하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아버지의 딸이니 제 재능을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