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3. 어린 아이와의 첫 독점 계약
"빨대는요?"
"아! 괜찮아요. 그럼 수고하세요."
맞은 편 편의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샀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집에 핸드 드립 장비도 있고, 커피 머신도 있지만 남이 타 준 커피가 먹고 싶을 때.
그 와중에도 일말의 양심이 뇌를 지배하며, 비싼 커피숍이 아닌 편의점으로 걸어가도록 내 발을 조종한다.
'그래... 남이 타 준 걸 먹고 싶다면, 가성비라도 챙기자!'
맞은 편에 편의점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비싼 커피숍이 있었다면?
그때는 또 다른 핑계거리를 만들며 커피숍으로 향하겠지.
가령 '다른 업체 모니터링을 해야지', '한 번 정도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지'라는 식으로 말이다.
'뭐가 됐건 오늘은 남이 타준 커피 먹을 거야!'
나는 편의점에서 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역시! 편의점 아아가 짱이야! 머리가 팍팍 도네!"
...?
"왜? 뭐? 왜?"
한 아이가 민망할 정도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 아이는 두 손에 컵라면서 나무젓가락이 있었다.
"너 왜 서서 먹어?"
"아줌마, 저쪽 가게 아줌마 아니에요?"
"...!"
뜨끔!
"어떻게 알았어? 우리 책방 온 적 없지 않아?"
아직 오픈한지 얼마 안되기도 했고, 그간 손님들이 소소하게 드나들었기에 대부분의 손님들을 기억한다.
특히나, 아이들은 더더욱. 왜냐고? 아이들은 단 한 명도 들어온 적이 없으니까.
"울 할머니가 거기 단골이거든요. 만날 주인 아줌마 걱정하던데. 돈 벌 생각 없는 거 같다고."
"아... 그랬구나... 할머니가 단골이시구나.... 어떤 분이실까?"
"맞춰 봐요."
"어?"
갑분수수께기?
"근데 너는 왜 서서 컵라면을 먹는 거야? 편의점 안에 테이블 있잖아. 모름지기 음식은 앉아서 먹는 거야."
"헐.... 꼰대 아줌마. 보세요. 저기에 제가 앉을 자리가 없잖아요."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편의점 테이블을 봤다.
이미 다른 아이들이 자리를 장악하고 있어서 아이의 말대로 앉을 공간이 없어보였다.
"그럼, 집에 가서 먹지."
"에휴. 속편한 소리 하시네요. 저 곧 학원 가야 해요. 왔다갔다 할 시간 없어서 여기서 대충 먹는 거예요."
갑자기 짠해졌다. 아니, 요즘 아이들 이렇게 힘들게 산단 말인가.
라떼에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로 아이들과 여기저기 놀러다니기에 바빴는데 말이지.
그렇게 놀다가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는 소리에 하나 둘 흩어졌었다.
학원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다니기 시작했고, 그때에도 밥은 집에서 먹었다.
가만 보니, 이 아이는 요리보고 조리봐도 중학생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학원이라니...
"너 몇 학년이야?"
"@@ 초등학교 4학년 1반 정다솔이요."
이건, 예나 지금이나 자기 소개할 때 학교, 학년, 반, 이름을 말하는 순서는 국룰인가 보다.
"근데 늘 그래? 너만 그러는 거야?"
"저 왕따 아니고요. 바쁜 아이들은 간간히 저처럼 해요. 저기 봐요."
아이가 가리키는 손을 따라가니, 두 명의 아이가 컵라면을 먹으면서 이동하고 있었다.
"그렇네. 그런데 그거 좋은 거 아닌데. 너네 할머니가 보면 짠-하시겠다."
"글쎄... 할머니는 개인주의라서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으세요. 그리고 걸으면서 먹는 게 왜 짠한 거예요?"
"음..."
생각해보니 아이의 말도 일리가 있다.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걸으면서 먹었다면 그 또한 당연한 일일터인데
너무 나만의 시선으로 짠하다고 말한 것 같아서 미안해졌다.
그럼에도 걸으면서 위태롭게 컵라면을 먹는 건 역시나 안쓰러워 보였다.
"학원 갈 시간은 좀 남았어?"
"음..."
아이는 시계를 보고선 말했다.
"네. 30분 정도 여유있어요."
"그럼, 편하게 먹자! 내가 안 봤으면 모르겠는데 보니까 좀 불편해.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나와 함께 책방으로 가지 않을래?"
아이는 고민하는 듯 했다.
"나 나쁜 사람 아닌 거 할머니를 통해 들었을거 아니야."
"아니, 그게 아니라. 컵라면 냄새가 책에 배면 어떻게 해요. 그럼 책 못 팔잖아요."
아니! 이런 감동적인 생각을 할 줄이야. 아이는 역시, 우리의 미래다.
"괜찮아. 어차피 책도 많지 않고, 문 열어놓고 환풍 잘 시키면 냄새 금방 빠져. 그래도 안 된다? 향수로 덧입히면 돼."
"아줌마, 진짜 돈 벌 생각 없군요."
"저기... 다른 건 다 모르겠는데 아줌마라는 호칭은 좀 바꿔 줄 수 없겠니?"
"생각해볼게요."
그렇게 책방 <독점>으로 들어왔다.
"와....!"
아이는 선뜻 들어오지 못하다가 들어온 다음에는 가게 안을 훑으며 감탄했다.
정말 별거 없는 내부임에도 놀라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웠다.
"여기 앉아서 먹어. 물 줄까?"
"네. 감사합니다. 근데 저건 뭐예요."
<독점>을 독점하세요!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 <독점>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독점> 하는 순간 무엇을 해도 자유입니다.
예약관련 문의는 010-****-****로 주세요.^^
"아! 책방만 하면 장사가 안되니까, 공간 대여도 해주는 거야. 오전 11시 대에는 늘 어르신들이 독점했어~!"
"아. 그렇구나."
아이는 말없이 또 컵라면을 먹었다.
"이것도 먹을래? 나 먹으려고 쟁여놓은 건데, 너 줄게."
나는 카운터에 숨겨놓은 주전부리를 꺼내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퍼주시면 생활하는 데 괜찮아요?"
"어... 어.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은 돼."
"그렇구나. 그럼 더 퍼주세요."
"응?"
"저, 평일 이 시간에 여기서 밥 먹어도 돼요? 독점 하고 싶어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