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자퇴는 선택?
누구나 한번은 꿈꾼다는 그 단어
작년. 큰아이가 고2 때 나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했다.
“아, 자퇴하고 싶다.”
그 후로도 두어 번 더 자퇴 이야기를 했더랬다.
“늦었어. 하려면 작년 고1 때 했어야지. 그러게, 엄마가 작년에 넌 자퇴 생각 없냐고 물어봤었잖아. 지금은 늦었어. 그냥 다녀야지 뭐~.”
이 대화에는 맥락이 있다.
고1 1학기가 끝나고 큰애 친구들이 셋이나 자퇴했다. 넷이 잘 어울려 다녔는데 큰애 빼고 셋이 다 줄줄이 자퇴를 한 것이다. 졸지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다 사라져 버려서 큰애의 교우 관계도 걱정되고 혹여나 얘도 친구들에게 자극받아 자퇴하겠다고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큰애와는 고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자퇴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모 고교 입시를 준비했다가 안 된 후 상심이 큰 채로 겨울 내내 눈물로 보냈던 아이였다. 매일 눈물만 주르륵 흘리며 자신감을 다 상실해 너무나 울적해 있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몹시 아렸다. 그때 아이를 위로하면서 했던 말이 있었다.
“엄마는 A부터 Z까지 다 생각하고 있어. 대안학교부터 유학까지 다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야. 고등학교엘 가도 네가 다른 길을 가겠다면 자퇴든 뭐든 다 고려할 거야”
유학 보낼 형편은 절대 안 되지만 살고 있는 집이라도 팔아야겠다는 터무니 없이 비장한 각오까지 있었다. 애가 다 죽어가니 보고 있는 엄마 마음은 정말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아이가 준비했던 애니메이션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대학이나 취업에서 관문이 무척 좁다는 것도 이유였다. 어차피 애니 사업이 큰 북미 쪽으로 진출하려면 그쪽에서 대학 공부를 하는 것도 나을 것 같았다. 당시 나란 사람이 참 극단적인 데가 있었다.
유학원에 상담도 가봤었다. 유학을 목표로 한다면 굳이 한국 대학을 거칠 게 아니라 아예 일찍 시작하는 게 나으니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졸업 자격을 취득한 후 가는 방법도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무모함이었다. 개인적인 사연이 있어 절대 유학을 보낼 경제 형편이 안 되는데 말이다.
세상을 잃은 듯한 아이의 모습에 당시엔 얘를 살려야겠다고 내가 너무 비장하고 진지했었던 것 같다. 학비는 어떻게든 댈 테지만 고생을 많이 할 거라고 당장이라도 유학을 보낸 것처럼 아이에게 진지한 당부도 했었다. 아이만 오케이 했으면 당장 집을 팔아 학비를 마련할 태세였다.
그렇게 ‘자퇴’를 유학을 위한 전략처럼 제시하고 들쑤신 후, 엄마의 비장함에 다소 겁을 먹은 아이가 선택한 것은 일반고 입학이었다. 엄마가 오바하니 아이가 되레 질린 것 같다. 눈치가 빤한 아인지라 가정 형편도 알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내 마음엔 언제든 아이 입에서 ‘자퇴’ 이야기가 나와도 진지하게 접근할 마음의 준비가 항상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집 근처 일반고에 입학하고 봄이 한참 꺾일 무렵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엄마, 저 **고 가길 너무 잘했어요. 진로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거든요.”라고….
수업 시간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고등학교에 잘 적응해 가고 있는 것이었다.
못 다닌다고, 안 다닌다고 할까 염려하는 마음이었는데 만족하며 잘 다니니 무척 대견했다. 그러다 아이는 애니가 아니라 디자인으로 스스로 진로를 바꿨다. 뮤지컬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무대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제는 애니고에 가지 못해 더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다.
“엄마, 애니고 안 가서 너무 다행이에요. 거기 갔으면 진로가 너무 확정이잖아요.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는데 그러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스스로 길을 찾아가고 아팠던 마음을 극복하는 모습이 너무나 고맙고 대견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죄다 1학기가 끝나고 자퇴를 해 버린 거다.
자퇴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다.
성적이다.
내신이 중요해진 와중에 1학년 때 내신이 삐끗하거나 뜻한 대로 잘 안 나오면 하나의 전략으로 자퇴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한 친구는 이미 그 전년도에 1학년을 다니다 자퇴하고 다시 재입학한 아이였다. 그 아이는 두 번째 자퇴인 셈이다.
자퇴를 하고 공부를 해서 다시 재입학하는 경우인데, 그렇더라도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성적이 성공적으로 나와주지는 않는다. 의미가 없고 아이만 고생하는 셈이다.
친구들이 다 자퇴해서 넌 친구가 없어 어떡하냐? 넌 자퇴하고 싶은 생각 없냐? 물었더니 아이는, 자기는 자퇴 생각이 전혀 없고, 학교는 다녀야겠단다.
그래서 교사인 이 엄마는 또 속으로 나름 감동을 했더랬다.
그러던 큰애가 1년 후 자퇴를 하고 싶다고 하는 거다.
아이의 자퇴 운운은 대체로 많은 아이가 힘이 들 때 내뱉는 탄식 같은 데가 있다.
학교에서 듣다 보면 자퇴와 자살이라는 엄청난 말을 아이들은 쉽게 힘들다는 말의 대체어로 써버린다. 특히 자살 운운하는 말은 주의를 준 적도 몇 번 있다.
여하튼 자퇴라는 말을 뱉는 밑 마음엔 다 관두고 싶을 만큼 빡빡한 학교생활과 피로가 있을 줄을 안다.
그래도 엄마한테 했던 말이 있기에 자퇴를 강행할 명분은 없다.
엄마인 나도 무작정 ‘자퇴는 안 돼’가 아니라 이미 계산에도 넣었었고, 넌지시 물어본 적도 있어서 아이가 부딪칠 벽이 되지도 않는다.
탄식처럼 ‘자퇴 하고 싶다’를 읊조리는 아이를 안아줬다. 힘들다는 투정이니 알아주는 수 밖에. 웃으며 농담처럼 “너두냐? 엄마도 학교 다니기 싫은데!”라고 했다.
아이와 난처한 웃음을 흘리며 에구구~ 하며 서로의 등을 두드리다 끝났다. ‘자퇴의 기회는 이미 지나갔다’는 농담과 함께.
자퇴가 끝이 아니다. 자퇴는 또 다른 시작. 어쩌면 더 어렵고 힘든 시작일 뿐이다.
담임했던 아이 중에서도 자퇴를 한 몇 명이 있었다.
성적 부담 때문에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자퇴를 한 친구도 있었고
검정고시 후 수능에만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대학에 가겠다고 자퇴를 한 친구도 있었다.
자퇴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학교는 힘들고 괴로워도 친구들이 있고 흐름에 따라 할 걸 하다 보면 하게 된다. 자퇴는 오로지 나의 몫. 어디 엄격한 기숙학원에다 의탁하는 게 아니라면 엄청난 초인적 의지와 시간 관리가 필요하다.
교사이지만 탈학교를 마냥 나쁘게만 보지는 않는다. 학교라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의구심도 있고, 자아실현과 사회화를 돕는 구조가 학교 외에도 다양한 통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있다. 도달하려는 목표에 어떻게 가느냐, 방법 차이로 생각이 될 때도 있다. 그 목표와 방법은 다들 다를 것이므로 각자의 선택에 유연하게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혼자서는 더욱더 힘든 길이므로 자기의 조건과 상황을 최대한 잘 세팅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막연한 계획이나 감상으로는 안 된다.
아이들이 학교를 자꾸만 떠나지 않도록 여러 가지가 달라져야 할 텐데…. 이것만으로도 날 밤 새고 쓸 수 있건만 참, '할(말은)많(지만)하(지)않(겠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