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고1, 내려놓기의 서막

by 심행일치

큰아이는 타 지역 애니고 입시에 실패하고 집 근처 일반고에 진학했다. 중학교 졸업 후 두 달 남짓을 눈물과 우울, 자책으로 보낸 뒤였다. 아이의 어깨는 눈에 띄게 위축되어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엔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수학 학원 원장실에서 쏟아진 눈물


뒤늦게 아이를 데리고 수학 학원을 찾았다. 미술을 전공한다면 수학 비중이 낮다지만, 아이의 진로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완전히 손을 놓게 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교사로서 시험 감독을 할 때마다 마주하는 풍경이 떠올랐다. 시험 시작과 동시에 한 번호로 기둥을 세우고 50분 내내 엎드려 자거나, 멍하니 낙서만 하는 아이들. 내 자식을 그런 '무기력한 수포자'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목표는 1등급, 2등급이 아니었다. 적어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알아듣고, 시험지를 받았을 때 단 몇 문제라도 스스로 풀어보려는 '태도'를 갖추는 것. 그 최소한의 동력을 얻기 위해 학원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레벨 테스트는 상처 난 아이의 자존감을 다시 한번 할퀴었다. 상담실에서 원장 선생님과 마주 앉은 아이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베테랑 원장님은 애써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제부터 열심히 해보자"고 격려했지만, 고개 숙인 아이의 무릎 위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수학 선행 좀 안 했다고 이토록 서럽게 울 일인가 싶어 가슴이 아렸다. 입시 실패의 충격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에게 '부족함'을 확인받는 자리는 너무나 가혹했던 모양이다.




내 자식을 향한 비장한 '쉴드'


평소 남들 앞에서 자식 자랑이나 칭찬을 삼가는 편이지만, 그날은 달랐다. 주눅 든 아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비장한 마음이 솟구쳤다. 원장 선생님께 결연하게 말씀드렸다.


"선생님, 우리 아이 비록 지금은 준비가 늦었지만 성품이 바르고 아주 성실합니다. 잘 이끌어주시면 누구보다 열심히 배울 아이예요."


내 또래로 보이는 원장님도 내 진심을 읽었는지 화답해 주셨다.

"그럼요 어머니, 선행했다고 다 잘하는 거 아닙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아 우리 같이 해보자! 선생님이 도와 줄게"


학원을 나서며 나는 일부러 더 밝은 목소리로 아이의 어깨를 감쌌다.

"수학 점수가 네 인격이나 실력의 전부는 아니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눈물도 나는 거지. 우리 딸, 포기만 안 하면 돼.“




"엄마, 저 안 자고 끝까지 풀어봤어요"


다행히 아이는 학교생활에 성실히 적응해 나갔다. 친구들이 한 학기를 버티지 못하고 연달아 자퇴를 할 때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켰다. 성적은 드라마틱하게 오르지 않았고 영어 학원 선택의 시행착오로 고생도 했지만, 아이는 내게 성적표보다 귀한 고백을 들려주었다.


"엄마, 모의고사 때 모르는 문제도 끝까지 붙들고 있었어요. 시험 감독 들어가면 멍하니 앉아 있는 애들이 제일 안타깝다던 엄마 말이 생각나서요. 어떻게든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봤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속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래, 바로 그 자세다.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힘. 네가 고등학교 3년 동안 배워야 할 진짜 공부는 바로 그것이었다.





20여년 차 교사 엄마의 지독한 성장통


대견한 마음 한편으로, 엄마로서의 일상은 사실 불안의 연속이었다. 20년 넘게 학교에서 수많은 학생을 지도해왔지만, 내 자식을 고등학생으로 키우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고통이었다.


체력이 약한 아이는 입술이 허옇게 부르튼 채 비척비척 등교했고, 중학교 때 '대부분 A'였던 성적은 현실의 벽 앞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학생들에겐 그토록 관대하고 너그러운 선생인 내가, 내 자식에게만큼은 왜 이리 후한 기대치를 내려놓지 못하는지.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다.


동료 교사들이 만든 멋진 학교 프로그램을 보며 "우리 애 학교는 왜 저런 게 없나" 야속해 하다가도, 결국엔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왜 세상의 잘난 아이들은 죄다 남의 집 자식인거냐는 뼈 있는 우스갯소리를 같은 처지의 엄마 교사들과 주고 받으며 나 또한 지독한 훈련을 치러야 했다.


고1 시절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불안과 우울이 파도처럼 밀려오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파도를 견디며 우리는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앞길에 놓인 돌을 다 치워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돌에 걸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태도를 갖출 수 있도록 묵묵히 곁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거듭되는 내려놓기 훈련은, 오만하고 현실감 없었던 나를 더욱 세심하게 학생 마음을 살피는 교사로, 작은 것에 감사하고 겸손한 엄마로 성숙하게 하는 공부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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