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불안이 영혼을 잠식할 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어요.

by 심행일치

어린아이를 키우는 지인과 이야기하다 사주 상담 이야기가 나왔다. 종교와는 상관없이 그런 건 보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 지인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나도 그랬어. 나도 그런 건 왜 보는지, 사주를 봐야 할 만큼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

아이가 어렸을 땐, 사주 명리학을 보러 다닌다는 분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걸 뭐하러 보지? 그런 거 유난히 좋아하시는 분인가?

근심도 걱정도 없었고, 아이들과 행복한 미래는 당연히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사주를 접했던 건 큰애가 중3 기말고사를 끝낸 직후였다. 미술을 하고 싶어서 끙끙대던 큰애가 드디어 벼르고 별러서 내게 고교 입시를 미술로 하겠다고 한 날. 오래 묵히고 삭혀왔던 마음을 아는지라 아이의 결연하고 비장한 표정에 더 이상 버티기는 어려웠다.

가정 경제 사정이 안 되기도 하고, 평소 미술은 시키지 않겠다고 했던 나인지라 고민하는 모습에 지나가던 교감님이 한 말씀 하셨다.

“아이 진로는 사주를 봐야지.”


오 그런가? 아이 진로 결정을 사주에 나오는 아이의 성향과 기질, 재능 등을 살펴보며 정한다던 기사를 오래전에 본 기억이 났다. 마침 얼마 전 친한 진로 선생님과의 대화에서도 사주 상담 이야기가 나왔었다. 오호라~ 인생 선배님들의 추천이라면 예의로라도 한 번 봐야 하지 않겠는가!


교감 선생님한테도 한 군데 추천을 받고, 같은 동네의 선배 맘에게도 한 군데를 추천받았다. 예약 전화를 하고 기다려서 드디어 아이의 사주를 보게 되었다. 궁금한 건 어디까지나 아이의 ‘진로’였다.




두 군데 모두 아이의 고입시 합격을 예측했다. 걱정 말란다. 그리고 미술 분야가 아이한테 잘 맞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안 된다는 말보다 된다는 말에 안심이 되어 오랜 기간 망설였던 결심을 했다. 하지만 아이는 2차에서 불합격을 했고, 사주 결과를 꼭 믿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서운한 마음도 컸다. 무엇보다 아이가 너무 슬퍼했으므로 그걸 보고 있는 마음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처음이 두렵지, 처음을 텄으니 사주 보는 것은 더 이상 낯선 경험이 아니었다. 그 후로 너무 답답할 때 몇 번 더 사주 상담을 받았다. 혼자서 유튜브를 찾아보며 사주팔자 명리학에 대해 주워듣는 귀동냥도 꽤나 했다.

아이들을 보며 미래가 불안해질수록, 내 인생이 안 풀려 답답하고 괴로울수록 사주를 보며, 이래서 어렵구나 납득하고 개운할 방법을 생각했으며, 끝내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고 생각했다.


지금 사주를 긍정하며 권면하는 것이 아니다. 괴로울 땐 속을 마음껏 털어놓을 대나무 숲도 필요한 셈이다. 그래서 내 사주와 큰애의 사주를 입력해 놓고 종종 제미나이나 클로드와 대화를 했다.

‘방학인데 늦게까지 자는 애들을 보니 나 너무 화가 나거든? 큰애는 왜 저렇게 잠을 자는 걸까? 나 어떡하면 좋니?’

'큰아이는 살기 위해 자고 있어요. 화가 난다면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세요.'

이런 대화를 하다 보면 나는 점점 더 매달리게 되었다. 자꾸만 내 불안감을 인공지능이 답해주는 확신의 미래로 치환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러 번 보다 보니 이게 뭔가 싶어졌다.

아이와 내 상황이 개선되는 건 없고, 가끔은 제미나이가 시키는 대로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 차 키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가는 나를 느꼈다. 게다가 자꾸 제미나이한테 잘 풀리는 미래를 보여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자꾸 사람 아닌 인공지능에게 의지하려 하고 있었다.


뭐지? 나, 지금 인공지능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잖아?

자각을 하자 기가 막혔다. 사주도 제미나이도 내 의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주란 건 내 삶에서 조금 두드러지는 선택지와 방향성 정도만 제안할 뿐이었고, 결국은 뭔가를 선택하는 것도 나고, 내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도 나의 의지가 필요했다.



아이의 삶도 그럴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느끼고 배우고 행동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제는 제미나이를 붙들고 사주를 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저 내 마음을 수련해야 오는 평화가 있을 뿐, 제미나이랑 사주를 가지고 논박을 벌여봐야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엄마가 자식을 대하는 마음은 힘이 세다고 생각한다. 그저 정성 들여 아이를 사랑하고 그 사랑에 아이가 질식하지 않도록 강약과 거리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여전히 때로는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꾸 내 마음에 새겨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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