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나다워지라'는 말이 싫다.
요즘 스스로 '이건 나답지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재밌는 책을 읽어도 시큰둥하다던지.
계속 남의 뒷담을 하는 사람 앞에서 그냥 웃어주고 맞장구 쳐준다던지
글쓸 생각 안들고 토익 공부나 열심히 할까 라고 생각한다던지 말이야.
근데 또 생각해보면 웃겨
재밌는 책 읽어도 시큰둥한 적 많았고
껄끄러움에 웃어준 적도 많았고
내 살길만 찾은 적 많은데 말이야.
근데 왜 난, 이게 나답지 않다고 느끼냐는 말이야.
그냥, 내가 이런 것들을 싫어해서야?
그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게 나를 말해준다는 건가.
'나'를 정의하는 방식이 그렇게 시시해도 되는 거야.
근데 '나'가 뭔지 생각하는 거 자체가 '나' 안에 갇히게 만드는 거 같애.
사람들은 우리더러 뭐든지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왜 나 이외엔 아무것도 되지 말라는 거야?
난, 나 이외에 아무것도 될 수 없는 거야?
내가 뭔데, '나'가 뭔데.
이렇게 쓰면서 그런 생각도 드네.
'나' 이외에 그 무엇도 되지 말라는 말도 어쩌면 도덕으로 작용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나 답지 못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면, 죄책감까지 드는 이 상황.
사실 그것도 나 내가 선택한 건데 말이야. 다 나인데 말이야.
'나'가 뭔지에 대해 골몰하는 것도
'나' 자신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것도
결국 제자리에 머무는 것
나는 '나'라는 건 없다는 말을 반쯤 믿고 있다.
젠체하는 빈티지숍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 있어.
결국 남이 버린 옷 가져다가 장사하는 거면서 창의적인 척 개쩌네
하지만 또 이렇게 생각했다
결국 남이 버린 옷들 중에 내가 뭘 고르느냐, 그게 그 빈티지숍의 정체성이 되는 거라고.
내가 뭘 고르느냐. 그 고른 것들의 관계성이 바로 나라고 ..
그러니까 '나'라는 건 없다는 말이 반쯤 맞다는 거야.
'나'는 '나'로 이루어져 있지 않지만,
그 이루어진 것들이 내는 특정한 스펙트럼의 빛은 오로지 나만이 낼 수 있는 빛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더러 뭐든지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왜 나 이외엔 아무것도 되지 말라는 거야?
난 나든 나 이외에든 뭐든지 되겠어. 그게 뭐든. 그냥. 맘가는대로.
나라는 거에 머물지 않겠어. 결국 그게 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