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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Oct 13. 2022

食생활

한 번 놓친 끼니는 다시 오지 않는다


따님.

저녁식사는 잘하셨나요?  맛있는 것 좀 드셨어요? 네, 오늘은 먹는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식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아빠의 명(망)언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지요?


  "한 번 놓친 끼니는 다시 오지 않는다. 오늘 점심은 내일의 점심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또 누군가에게는 질타를 받았던 그 말, 말입니다. 따님의 사촌은 이 말에 크게 감명받아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하고 있다고 하지요. 따님은 어떠신가요? 한 번 놓치면 다시 오지 않을 그날의 한 끼 한 끼를 잘 챙기고 계신가요? 귀찮아서 혹은 바빠서 대충 때우고 있지는 않나요? 아빠의 말에 입을 삐죽거렸지만, 분가한 따님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먹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 뭐 먹었어?'. '걱정 마, 잘 먹고 다녀.' 우리의 통화는 늘 이렇게 시작되곤 하지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궁금합니다. 따님은 저녁을 제대로 잘 챙겨드셨을까. 확고한 음식 철학을 가진 부친을 두셨으니 끼니 챙겨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잘 챙겨 드시리라 믿어요. 아니어도 할 수 없고요. 점심을 굶었으면, 저녁을 잘 먹으면 되는 거지요. 점심을 놓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고, 점심시간이 지난 줄도 모르고 몰두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누군가에게는 끼니를 챙겨 먹는 일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에게 저 말은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해요. 콕 집어 말하면, 주로 먹는 일 보다 먹을 것을 차리는 사람들에게 특히 그래요. 한 끼를 놓치지 않고 꼭 먹어야 하는 사람과 그 끼니를 만들고 차려내야 하는 사람. 제일 먼저 할머니가 떠올랐어요. 음식에 대한 아빠의 신념 뒤에는 자식에게 따뜻한 한 끼를 먹이고자 했던 할머니의 고달픈 노동이 있습니다. 먹는 일이 매일매일 어려운 숙제처럼 여겨졌던 시대에 그 숙제를 해내기 위해서 동분서주해야 했던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아무리 음식 솜씨가 좋은 분이라 해도, 삼시세끼 자식에게 따뜻한 밥을 해 먹였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분이라 해도 그 상차림이 과연 기쁘기만 한 것이었을까요. 고된 시간을 살아온 할머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날 방식으로 자식의 놓칠 수 없는 한 끼를 위해서 해묵은 숙제를 하십니다. 할머니의 숙제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한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밥 한 끼'가 전부였던 시대를 살아온 할머니에게 밥 한 끼를 위한 노동의 중단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상실감으로 다가오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늙은 몸을 부려가며 밥상을 차리는 할머니 모습을 지켜보는 건 늘 안타깝고, 답답하며 때로 왠지 모르게 화가 나기도 합니다.



할머니의 추석 송편


그런데 할머니와 조금은 다른 시대를 살아온 저라고 다를까요? 저 또한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밥 한 끼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정성껏 만든 음식을 따님께 먹이고 싶어요. 그런데 할머니에게 '밥 한 끼'가 거의 신앙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저에게(저의 세대에게) 밥은 그저 '밥'입니다. 밥에 실린 마음이 사랑인 것은 똑같지만, 오직 밥만이 사랑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래서 밥에 대한 할머니와 엄마의 생각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가능한 집에서 메뉴를 바꿔가며 밥을 해 먹고 싶어요. 그러나 시간도 여의치 않고 솔직히 귀찮고 피곤하기도 해요. 따님도 아시다시피 매일의 끼니를 제대로 차려먹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식사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려고 애씁니다. 주말에 기본 재료를 먹기 좋게 준비해 놓고, 평일에는 준비해 놓은 재료를 활용해서 손쉽게 음식을 만드는 방식으로요. 무엇보다 '한 끼'의 재료가 반드시 쌀로 만들어진 '밥'일 필요도 없어요. 할머니는 모든 음식은 바로 해서 먹어야 한다고 하셨지만, 오늘 먹고 남은 것을 다음날 먹어도 되고, 해 먹지 않고 사 먹는 밥도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쯧쯧. 할머니의 혀 차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네요.


그러나 저도 따님이 집에 오는 날에는 뭘 해 먹일까, 고민을 하고 긴 시간을 주방에서 보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랑의 표현들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한 끼 밥' 만큼 강력하고 확실한 것이 없어서일까요? 저는 이번 주말에 오는 따님을 위해 장을 보고 요리를 할 것입니다. 그런 엄마를 보는 따님의 마음은 어떨까요? 할머니를 바라보는 나처럼 복잡한 마음이 들까요? 그저 산뜻하게 고마운 마음만 갖길 바라요. 혹시라도 할머니를 보는 나의 마음처럼, 나를 보는 따님의 마음이 복잡해지면, 조용히 팔 걷어붙이고 내 옆으로 와요. 우리 함께 요리해요.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해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잖아요.


그리고 따님.

제가 이것저것 음식을 좀 만들어 보고 내린 결론은 '내가 만든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이죠. 나는 내 입맛에 맞게 음식을 만드니까요. '남이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 말도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 거의 전적으로 음식 노동을 담당해 온 여성들이 이 말의 당사자들입니다. 음식 노동에서 자유로워졌을 때 오는 가벼운 마음이 그렇게 표현되는 것이죠. 그런데 단언하지만 내가 내 입맛에 맞게 만든 음식이 제일 맛있어요. 그러니 먹는 것에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한 따님도 따님의 입맛에 맞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 드세요. 요리법이야 뭐, 훌륭한 선생님들이 도처에 계시니 좋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나를 위해 스스로 음식을 만들고 차리는 것은 나를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죠. 그러니 가능한 정갈하게 드시고, 맛있는 디저트를 위해 배는 조금 비워두세요. 혹시, 아빠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남성을 만난다면 끼니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솔선해서 주방으로 향하는지 반드시 확인하세요. 주방에서 서로의 입맛을 존중하며 두 사람 모두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는 것도 사랑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함께, 한 번 놓치면 다시 오지 않을 한 끼를 만들면서 다시 오지 않을 행복감을 느끼길 바랍니다.


 다행히도 현재, 따님의 부친은 그 세대 대부분의 남성들과 달리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곧잘 만들어 먹(주)고, 치우는 과정을 어렵지 않게 잘합니다. 타고난 것인지 저를 만나서 계발이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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