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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Oct 13. 2022

酒생활

어제는 사케를 마셨으니...

따님.

오늘은 조금 다른 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요. 제 휴대폰의 배경화면, 벤자민 프랭클린이 했다는 말로 시작할까요?


Beer is proof that God loves us and wants us to be happy.


Beer 자리에 세상 모든 종류의 술 이름을 써넣어도 좋을 문장입니다. 따님도 익히 알고 있겠지만 저는 술을 참 좋아해요. 술을 좋아한다고 하면, 흔히 사람들은 술을 잘 마시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고(술자리를 함께 한 동료는 결코 오해이 아니라고 하긴 했지만), 술자리 즉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하곤 하는데 거듭 말하지만 저는 술을 좋아해요. 맛있는 음식과 그 음식에 어울리는 술을 함께 마시는 것만큼 몸과 마음이 동시에 행복해지는 것은 흔치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집에서 하는 요리의 대부분이 훌륭한 술안주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연애할 때, 유명한 꼼장어(곰장어라고 표준말로 쓰면 맛이 안 나요) 집에서 소주를 마시는 저를 보고 아빠는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나도 술을 배워야지'. 제가 그 자리에서 마신 술이 소주 두 병이라고 사람들에게 어찌나 과장해서 말을 하는지 그때만 해도 청순한 이미지를 뽐내던 제가 좀 난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저 때문에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아빠의 말이 생판 거짓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아빠는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잘 마시지도 않죠. 술보다는 왁자하고 떠들썩한 술자리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가끔 함께 술을 마셔주는 아빠에게 고마움을 느낀답니다.


이토록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따님이 고주망태로 취해서 들어온 날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술 마시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보여준 사람으로서 뭐라 뭐라 잔소리를 늘어놓기가 좀 면(面)이 서지 않는 그런 상황이었죠. 그저 등짝을 후려치는 것으로 당황스러운 마음을 표현한 기억이 나요. 다음 날 해장국을 끓여주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저는 해장을 잘하지 않는 편인지라). 나름대로 화려한 음주의 역사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술을 적당히 마셔라', 같은 조언은 차마 하지 못하겠어요. 술도 연애도 경험할 만큼 경험을 해 봐야 자신에게 맞는 술과 사람을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주종 불문하고 다양한 술을 접해 보세요.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면 따님에게 딱 맞는 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따님은 요즘 어떤 술을 주로 드시나요? 어제 저녁에는 바람이 참 좋더라고요. 몸의 감각을 다 살아나게 해주는 맛있는 것이 먹고 싶어서 집 근처에 있는 단골집(시즌에 한 번가도 정기적으로 가면 단골)에 갔죠. 사케를  시키고 어울리는 안주를 해달라고 해서 먹었는데, 사케가 또 그렇게 맛이 좋더라고요. 즐겨먹을 기회가 없어서 뜨문뜨문 먹던 술인데 아주 좋았어요. 아직 탐구해야 할 주류의 세계가 이렇게 무궁무진해요.


오늘의 즐거움


그런데 말이죠, 따님.

따님은 어떤 기분으로 술을 마시나요? 저는 그 오랜 음주의 역사에서 기분이 나쁘거나 마음이 상했을 때 술을 마신 기억이 별로 없어요. 실연의 아픔을 잊고자 한 번 마셨던가, 그 외에 몇 번 더 있었나 아무튼 우울한 기분으로 술을 마시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술을 찾게 되는 경우는 대부분 음식이 좋을 때입니다. 아무리 잘 차려진 음식이라 해도 술이 없으면 꽝! 저는 절때 '깡술'은 먹지 않아요. 그래서 술꾼이 아닙니다. 애주가입니다. 그리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술을 마시게 돼요. 크게 즐거운 일이 없더라도 어제처럼 마음이 편안한 날에는 술을 곧잘 마시죠. 생각해 보면 이런 음주 습관은 약간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해요. 술을 슬픔을 과장하거나, 화를 증폭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행복감을 확장시켜주는 도구로 여겼달까요. 벤자민 프랭클린이 했다는 저 명언의 앞뒤 맥락은 잘 모르겠지만, 술은 정말로 행복해지기 위해 마셔야 해요.  아시겠지요? 따님.


역세권, 숲세권 등 살기 좋은 동네를 지칭하는 여러 말들이 있는데 술세권은 어떤가요? 바람 좋은 날, 편한 옷차림에 슬리퍼 끌고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다가 마음이 동하면 편안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소박한 술집이 동네. 우리 집이 딱, 그런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이사를 못 가요.


어제는 사케를 마셨으니, 오늘은 영화를 보며 맥주 한 캔 해야겠어요. 맥주는 라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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