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원 Oct 13. 2022

性생활

마음 놓고 쾌락에 빠지세요

흐흐흐

오늘은 선뜻 이야기를 시작하기가 좀 어렵네요. 性생활이라니, 모녀지간에 이런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려니 솔직히 좀 민망합니다. 가끔 '피임은 잘하고 있느냐' 는 말을 농담처럼 던지기는 했어도 이 문제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가볍게 이야기합시다 우리.


언젠가 미국 TV 드라마 <프렌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기억하나요? <프렌즈>에는 이런 장면이 나와요. 극 중 모니카가 남자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마음이 동해서 서로 섹스에 합의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집에 콘돔이 없는 거예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죠? <프렌즈>에서 모니카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그러나, 경쾌하게 다음을 기약하고 남자 친구에게 bye~! 를 외칩니다. 남자 친구도 아쉬운 얼굴로, 그러나 쿨하게 bye~! 바로 이어서 그 유명한 <프렌즈>의 클로징 음악이 흐릅니다. 그 장면이 매우 신선했고,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그래서 모종의 의도를 가지고 따님에게 이 에피소드를 들려주었을 거예요. 합의된 섹스가 중요하다는 것과 피임기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서 말이죠. 저의 바람을 따님은 눈치채고 있었나요?


<프렌즈>의 한 장면


저는 성(性)에 관한 주제를 입에 올리는 것은 점잖지 못한 태도라고 배웠어요. 명시적으로 학습했다기보다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랬죠. 여자가 성(性)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야하고 더 심하게는 문란한 이미지를 주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그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따님에게 들려줄 것이 많지 않아요. 그래도 용기를 내서 생각하고 있고 있던 바를 몇 가지 이야기하고 싶어요. 먼저, 섹스가 주는 즐거움과 쾌락(이 단어를 써놓고 발음해 보니 기분이 활활발발 해지는 것이 매우 좋군요)에 개방적인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몸과 몸이 만나는 친밀한 관계에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규범이 개입이 되면 순순한 즐거움을 느끼기가 어렵게 되지요(네? 그런 말 하지 말라고요? 전통적인 규범의 현현이 바로 부모라고요? 아뿔싸). 따님은 규범과 도덕은 내려놓으시고 마음 놓고 쾌락에 빠지세요. 그리고 그 즐거움과 쾌락에 대해 상대방과 대화하기를 권합니다. 섹스에 대한 느낌과 감정을 상대방과 함께 나누는 것도 섹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니까요. 몸의 친밀감이 대화를 통과하면 서로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발전되지 않을까요?


따님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고루한 잔소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그래도 이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는 것은 마음 한 구석에 걱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고, 그 배경에는 여성(과 여성의 性)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딸을 둔 부모들은 딸의 몸을 꽁꽁 싸매서라도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딸들을 보호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저도 염려가 없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통제하고 경계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은 아닐 겁니다. 그 통제가 여성에게만 가해질 때 여성은 사회의 구석으로 밀려나서 움츠러 든 삶을 살게 되니까요. 또한 통제는 새로운 권력을 낳고 그것이 '따님들'에게 옳게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밤길 조심하고 집에 일찍 일찍 들어가라'는 말이 늘 목에 걸려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내뱉을 수 없는 건 여성을 위협하는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따님(들) 개인의 몫으로 떠넘기기가 싫어서입니다. 밤이 아닌 낮에도,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에서도 자신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말하기 쑥스러운 주제가 너무 심각한 주제로 겨왔나요?


저는 따님이 우리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부당한 압력에 주목하면서 동시에 몸이 주는 즐거움에 주눅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저는 따님이 여성의 몸에 대한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이 무슨 어려운 주문이란 말입니까. 나의 몸을 알고, 몸이 주는 즐거움을 죄의식 없이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생활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즐거움이, 가능하면 관계를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런 소박한 바람이 실현될 수 있도록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주목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따님도 동참하시를.


네? 우리 부부의 성생활은 어떠냐고요? 어머, 무슨 그런 질문을 하고 그래요.





이전 05화 住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