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 요시이, 비비
첫날 만났던 요코는 일주일 만에 떠났다. 어학원에서는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매주 단체 사진을 찍어 엽서를 만들어 주는데, 함께 공부한 사람들이 거기에 메시지를 남긴다. 요코는 마지막 날, 엽서를 가지고 내가 있는 교실로 찾아왔다. 영어실력이 좋은 요코는 '비즈니스 일글리시'반에서 공부했다. 그녀가 내민 엽서에 나는 'Good Luck with your future!'라고 썼다. 그리고 아래에 한국말로 '당신의 미래를 응원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진심이었다. 짧은 휴가 기간에 영어 공부를 위해 쿠알라룸프르까지 날아온 여성이라면,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용기와 힘을 갖고 있을 터였다. 그래도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여기 너의 미래를 응원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어.'
요코 외에도 어학원에는 중년의 여성들이 몇 명 더 있다. 나는 일본에서 온 '요시이'와 카자흐스탄에서 온 '비비'와 같은 반인데 요시이와는 늘 같은 테이블에 앉는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온 요시이는 말수가 적은데, 먼저 말을 건네면 반갑게 응답을 해 준다. 작문을 하다 스펠링을 물어보면 정확하게 알려주고, 카밀라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멍하니 있으면 교재의 페이지를 슬며시 가리킨다. 큰 소리로 웃지 않고,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 모습에서 전통적인 일본 교육의 흔적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가 아들이 공부하는 동안 대기실이나 쇼핑센터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고(그렇게 하는 부모들이 꽤 있다), 자신의 공부를 하는 모습이 좋았다. 물론 그 선택도 아들에 대한 교육열과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자신에게 시간과 돈을 기꺼이 투자할 만큼 스스로를 잘 관리할 줄 아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취미도 취향도 비슷한(이런 것은 몇 번 팀 활동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요시이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첫날, 앤디의 수업에서 비비를 보았다. 퀴즈 수업에 어찌나 열을 내는지, 솔직히 좀 부담스러웠다. 수업시간에는 언제나 비비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대답도 제일 먼저 하고, 어떤 과제에든 적극적으로 임했다.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사람이었다. 요시이와는 정반대였다. 나는 의도적으로 비비가 앉은 테이블에는 앉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다이내믹한 앤디의 수업에서 특정한 사람을 끝까지 피하기란 어렵다. 어느 날 비비와 함께 활동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어디서 왔니? 뭐 하니? 하는 질문을 주고받게 되었다. 내가 퇴직을 했다고 하자 비비는 부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자신은 일 때문에 영어가 필요해서 왔고, 돌아가면 더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아이가 넷인데 막내는 남편이 카자흐스탄에서 돌보고 있고, 세 자녀와 함께 어학원에 다니는데 아이들을 돌보랴 자기 공부를 하랴 정신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상황에 공감했고, 그 마음을 서툴게 표현했다. 그 뒤로 비비의 열정적인 수업태도가 더 이상 거슬리지 않았다. 다만, 아침 등굣길(?)에 같은 신호등 앞에서 마주치면 슬쩍 뒤로 물러선다. 어학원까지 가는 길에 그녀와 나눌 스몰토크도 마땅치 않고, 아직은 그녀의 발음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면서.
요코, 요시이와 비비 말고도 어학원의 중년 여성들은 하나같이 부지런하다. 저마다의 이유로 비행기를 타고 온 그녀들은 어리고 젊은 친구들과 똑같이 책상에 앉아 공부한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스터디룸에서 조용히 공부하고 있는 요시이를 종종 목격한다. 모든 수업 활동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답을 외치는 비비의 모습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런 비비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한 문제라도 더 맞히려고 마음이 분주해진다. 이토록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자기 삶을 일구는 아줌마들이라니, 반갑고 또 반갑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속에서 그들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이런 표현, 과장되고 상투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경험해 보니, 팩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