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잘 지내셨나요.

by 평일

Q: 철새가 때를 지어 날아갈 즈음 생각이 제일 많다고 들었다. 사실인지?


N: 사실이다. 철새가 한국을 뜨고 있다는 의미는,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의미기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다.


Q: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N: 이번 한 해에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3인칭으로 생각하여 (최대한) 보정 없는 모습으로 다시 보려 한다. 최악부터, 최고를 거쳐, 다시 최악까지 훑는다.


Q: 3인칭으로 본 당신의 모습은 어땠나?


N: 이번 년도에는 유독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보았는데, 대부분 썩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정말 내가 너무 싫어하는 색깔을 뿜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문득 그 사람들과 비슷한 행동을 했던 장면이 그려지더라. 내가 지독하게 싫어하는 것들은, 나에 대한 자기혐오의 일종이 아닐까 싶었다.


Q: 올해의 최악의 순간과 최고의 순간은?


N: 이번 년도에는 최악의 순간과, 최고의 순간이 겹쳤다. 사람 한 명을 보냈는데, 그게 참 최악이었고, 최고의 순간이었다. 어떤 모양은 귀퉁이를 도려낸 모습이, 그 모양의 원래 모습이더라. 다만 도려낸 귀퉁이가 내가 가장 사랑했던 부분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 때면, 가끔 오싹하며 추울 때가 있다.

이렇게!

Q: 평탄한 한 해였는지.


N: 음,,, 그럭저럭,,, 나는 평소에 어디에 찔리거나, 부딪치면 피가 나는지 안 나는지를 제일 먼저 보는데, 피가 나면 다친 거고, 안 나면 안 다친 거다. 피는 안 났다. 피만 안 났다.


Q: 힘든 일이 있을 때 극복하는 방법은?


N: 슬레셔 무비를 보면, 꼭 등장인물이 전화를 받지 않아 자동응답 기능으로 음성메모를 남기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아, 저 사람 분명 무슨 일 생기겠구나" 생각하면, 역시나 다음 장면에서는 음성메모를 받은 사람이 살인마한테 쫒기고 있다.

아이러니한 클리셰다. 남긴 사람은, 음성 메세지에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보냈지만, 받은 사람은 반드시 험한 꼴을 당하니 말이다.

문제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발생한다. 어차피 내 의도대로 안 될 거라면, 그냥 흘러가게 두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Q: 발전했는지.


N: 먼저 "발전을 했다" 라는 기준이 좀 모호하지 않나. 누군가에게 발전이란 "현상 유지" 정도일 것이고, 누군가에게 발전이란 "비약적인 성장" 일 테니까. 나에게 있어서 발전이란 후자에 가까운데, 이번 년도에 내가 한 발전은 안타깝지만 전자에 가까웠다.

유튜브의 망령인 나는, 다양한 정보를 얇고 넓게 알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붉은 여왕 효과"라는 이론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적당한 노력을 하는 사람은 간신히 현상 유지만 할 수 있을 뿐, 진화할 수 없기 때문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야 한다는 내용인데, 올 한 해 내내 "현상 유지"만 했던 사람으로서, 그 영상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내 저격 글과 비슷한 무언가였다.

발전을 했나? 라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네!" 다. 하지만 속으론 뜨끔하겠지.


마무리지으며.

짧았던 22년도였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잘 지내셨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제 22년도는 이랬어요. 입대 전에 편지를 쓴 게 엊그제 같은데 다다음주면 전역이네요. 시간이 참 빨라요. 많은 것들이 바뀌셨나요. 저는 꽤 많은 것들이 바꼈거든요. 이렇든 저렇든 아무쪼록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남은 두 달동안도 많은 것들을 사랑하는 걸 목표로 두고 살아 갈 예정이랍니다.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사랑 받으시며 한 해 마무리 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paulo에서 평일이 된 유용현이 쓰며,

22.10. 30/ 검정치마- 혜야 들으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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