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순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일 May 03. 2023

순애(殉愛/純愛)

3.

보통, 나에 대한 얘기를 여기까지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두 종류로 나뉘 곤 했다. 첫 번째는 나를 동정하는 사람들.

동정심의 또 다른 말은, 책임 없는 따뜻함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들이 건네는 따뜻함을 즐겼던 때가 있었다. 그런 부류의 따뜻함은, 할매가 건네는 것과는 또 다른 무언가였으니까. 물론 책임 없는 따뜻함의 근원은,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기 위한 우월감의 일종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렇게 먼 시점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는 축구부에 들어가야만 했다. 어린 시절부터 심하게 내성적이었던 나를 개조하기 위해세운 할매의 특단의 조치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할매의 선택은 반은 성공이었고, 반은 실패로 돌아갔다

생각지도 못한 작은 재능이, 축구 쪽에서 발현되어 준 덕에, 나는 의외로 그 무리에 빠르게 녹아들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무리에 완전히 녹아들기 위해서는, 이것저것들을 세금처럼 꼬박꼬박 내야만 했다.

대표적으로는 친구들끼리 한 번씩 돌아가면서 사는 떡꼬치 값이나 제티, 또 운동이 끝나고 남는 시간에 운동장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하는 얘기들이 그랬다.



이야기는 이스트를 넣은 밀가루 반죽처럼 빠르게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일주일 뒤쯤에, 엄마는 아빠를 무참히 살해하고 도망간, 도망자가 되어 있었다.

그 이후로 아이들은, 자연스레 나를 피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론, 나 역시도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피해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순애(殖愛/純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