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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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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May 02. 2023

순애(殖愛/純愛)

2.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외로운 감정을 느껴야 했던 데에는, 나름 합당한 이유가 존재했다. 당연하게도 현실적인 이유였는데,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였고, 엄마는 아빠보다도 일이 훨씬 더 많았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외로움을 느끼는 감정과는 별개로, 내 몸은 언제나 간질거렸으니까.

특히 엄마는 사랑이 무척이나 많은 사람이었다. 엄마가나를 꼭 안아주고 나면, 내 몸에 끈적한 꿀이 묻어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랬다.

그만큼 그 사람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몇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사랑이 흘러넘칠 정도로 많았던 사람인지라, 그 흘러넘치는 것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빠와 나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그랬다는 게 그랬고, 아주 어렸던 내가 봐도,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낄만한 장면을 두 눈으로 직접 봐버렸다는 게 그랬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즈음에는 친할머니랑 같이 살게 되었다. 사실은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내 외로움을 들켜버려서 이렇게 됐나 싶은 마음에, 나를 계속 탓해야만 했고, 들켜버린 건 내 외로움이 아닌, 엄마의 외로움이었다는 걸 알아차리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할매와 살 때도 2주에 한 번씩은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엄마를 만나면, 엄마는 항상 햄버거를 사줬다. 같이 살 때는 건강에 안 좋다고 못 먹게 했으면서.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 앞 햄버거 집에서 엄마를 만났다.

  -요즘에도 많이 바빠?

  -응, 너무 바쁘네.

  -나 안 보고 싶어?

엄마가 내 물음에 대답을 주지 않고선, 감자튀김을 집었다. 먹진 않고 다시 내려놓았다. 그 맛있는 감자튀김을 왜 먹지 않는지 의아했다.

  -다 먹었니?

  -응, 다 먹었어.

  -엄마 먹은 거 치우고 나갈게, 먼저 나가있을래?

엄마가 쓰레기를 모아서,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유리창을 통해 본 엄마의 어깨가, 쓰레기통 앞에서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엄마는 한 달에 한 번, 길게는 두 달에 한 번씩 찾아오다가 발걸음을 아예 끊어버렸다.

그다지 슬프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사랑해 마지않는 할매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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