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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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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May 23.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탄

18. (나와 탄 / 끝)

탄이 전화를 받지 않는 것과 별개로, 수능은 무척이나 성공적이었다. 비록 원하는 과는 아니었지만, 나는 목표로 하던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즈음에, 우리 동네에서는 이상한 소문들이, 동시에 함께 돌아다녔다. 극성이었던 한 아빠가, 수능을 망친 아들을 때려죽였다는 소문과, 우등생이었던 한 학생이, 극성이었던 아빠를 찔러 죽였다는 소문이.

자, 이제 우리는 한 가지 실험을 하려고 한다.

우린, 1시간 뒤 50%의 확률로 독가스가 나오는 상자 안에, 고양이를 한 마리 넣었다. 시간은 흘렀고, 우린 고양이를 넣었던 상자 앞에 다시 서있다. 고양이는 살았을까, 죽었을까? 고양이의 생사 여부는, 상자를 직접 열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탄이 죽었는지, 죽였는지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나는 탄이 살아있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탄을 일종의 중립 상태로 두고, 상자에 풍선 다발을 묶어 하늘 위로 날려 보내기로 했다. 탄이 내 시야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걱정보다는 안심이 됐다.

탄은 살아있다, 분명 탄은 살아있다. 다만 놓친 풍선같이, 아득히 먼 곳으로 날아갔기에, 내 눈으로만 볼 수 없는 것뿐이다.


탄이 날아가 버렸다고 해서, 크게 바뀐 건 없었다.

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 그리고 하연이 더 이상 내 곁에 있지 않았고, 탄이 자주 나다니던 곳들과,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우던 골목에 탄이 없었다.

그것 말고는 모든 게 같았다. 그뿐이다. 딱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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