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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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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Jul 12.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하연

52.

우리 고등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반씩 돌아가면서 급식당번을 맡곤 했다. 우리 반은 그다음 순서였고, 대부분 학생들은 급식당번 맡기를 꺼려했다.

  -이번에 우리, 급식당번 반인 거 알지? 혹시 자원 있나없지? 그냥 바로 뽑는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짝꿍이 손을 모은 채,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 벌써 우리 반 차례라고? 진짜··· 제발··· 씨발··· 제발···

  -나 할래.

  -뭐야. 이걸 한다고?

짝꿍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미쳤어? 너 저번에도 한 번 했잖아.

  -나는 재밌던데.

  -별게 다 재밌네. 아, 살짝 고통을 즐기는 타입?

짝꿍이 눈썹을 씰룩거리며, 음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자원 더 없지? 나머지 4명은 뽑기 돌린다?

회장이 클릭을 한 번 할 때마다, 구석구석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지막 한 명 뽑는다. 자리 뭐 남았지? 배식은 끝났고··· 청소 남았네.

회장의 말에 친구들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기도를 했고, 누군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짝꿍 같은 경우에는, 두 쪽 다인 경우였다. 반장이 버튼을 누르고, 한차례 조용한 순간이 찾아왔다. 곧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이 소리를 들은, 짝꿍이 모았던 손을 풀고, 슬며시 눈을 떴다.

  -제발··· 제발··· 씨발··· 진짜.

  -그런 걸로, 기도를 왜 하냐? 내가 신이었어도, 급식당번 빼달라는 기도는 안 들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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