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타북스 Jan 24. 2024

나이들어 큰돈을 빌려달라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한 말

전라남도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삶을 개척하려 했던 나의 지인은

예기치 않게 사고에 휘말리게 되었고

당장 상당한 금액의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에게 낯선 서울은 엄혹하기만 했고 돈을 구하려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상황이 급박해지자 마지막 결심을 했다.     


고향의 어머니에게 내려가 말씀을 드리기로.     


돈이 있을 리 없는 어머니, 결코 가서는 안 되는 어머니에게

간다는 사실에 그의 마음은 무거웠고 가는 중에도 쉴 새 없이 자책했다.     


밭일을 하고 있던 어머니를 찾아갔고 그는 어머니와 눈을 부딪치지 않으려

허공에 시선을 둔 채 무심한 듯 이야길 했다.     


“어머니. 제가 급히 돈이 필요합니다.

오늘 오후 차를 타고 돌아가지 않으면

사태를 막을 수가 없어서요…….”     


애써 허공에 힘든 눈길을 두었던 그가 얘기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텅 빈 벌판과 진흙더미 사이로 난 조그만 맨발 자국만 보였다.     

어머니는 쏜살같이 동네를 향해 달려가 버려 그의 시야에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깊은 죄책감에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고 있는데

어머니가 숨을 헐떡 거리며 돈뭉치를 내밀었다.     


첫눈에 봐도 어머니가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피를 토하며 사정하고 마련해 온 돈임이 분명했다.      


“나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그는 다음에 이어질 한마디를 짐작하며 눈을 감았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렇게나 돈이 없어...”     


그의 가슴은 죄책감을 넘어 폭발할 것만 같았다.

효도를 받아도 한참 받아야 할 나이에 큰돈을 달라는 아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울 것인가.      


내려오지 않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몰려오는 사이

그의 귓전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니가 요로콤 오랜만에 내려왔는디...

돈 구하느라 금쪽같은 시간 다 보내뿌리고...

닭 한 마리 삶아 멕이지 못하고 보내야 한단 말이냐.

어여, 어여 가거라잉. 기차 시간 늦겄다.”     


그날 지인은 기차가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흐르다 멎고 멎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느라 손수건이 물수건 되었다 했다.


태양과 어머니만이 영원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해당 콘텐츠는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김진명 작가의 첫 에세이『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가 궁금하다면?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매거진의 이전글 제갈량은 알면서 창조리는 모른다면 반성해야 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