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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cc May 09. 2020

중요한 건 태도다

박보나 <태도가 작품이 될 때>(2019)

태도가 작품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Artwork)

박보나 저 | 바다출판사 | 14,800원     


편집자 입장에서 칼럼의 필자에게 기대하는 글이 있다. 깊이는 있되 가독성이 좋고, 정해진 글자수 안에서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는 그런 글. 소재가 참신하고 전문적이면 더 좋고. 칼럼의 분야는 정해져있지만, 반복적이지 않고 매번 다른 이야기를,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를 해줬으면 하는. 그런 면에서 <태도가 작품이 될 때>의 저자 박보나(1977~) 작가는 참 훌륭한 필자였으리라.


이 책은 2016년부터 <한겨레>에 연재됐던 박보나의 칼럼을 엮은 것이다. 현대미술작가인 박보나는 특정 매체와 형식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영상·사운드·설치·퍼포먼스를 망라한다. 여기엔 미술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의 형식이 아니라 작품을 통한 태도의 제안이다. 그래서 경직된 미술계를 돌아보게 하는 퍼포먼스 작품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을 말해드립니다 1(I tell what you believe 1)>(2014)에서는 갤러리 도우미에게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는 탭댄스 슈즈를 신겼다. 그가 관람객의 안내를 도우려고 움직일 때마다, 타닥거리는 신발 소리가 경쾌한 신호처럼 울려 퍼졌다.


이러한 박보나의 관점은, 동시대 미술작가들의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그가 유추해낸 작품의 의미들은 작가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반대로, 작품을 통해 작가의 태도를 유추해가기도 한다. 어쨌거나 박보나에게 중요한 것은 태도다. 그건 곧 미술 작업을 하는 태도를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로 확장된다. 그렇기에 미술 비평글임에도 시의성이 있다. 여러 편의 글에서 2016~2018년의 굵직한 이슈였던 박근혜 탄핵, 난민, 페미니즘 등이 시대적 배경으로 드러난다. 


글을 읽다보면 현대미술은 결코 동시대와 동떨어진 것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서문에서 “글을 쓰면서 작업을 하듯이 당시 한국 사회를 비껴서 바라보려고 노력했고, 비슷한 태도를 가진 동시대 미술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세상을 읽으려고 시도했다.”고 말한다. 예컨대 사진작가 박영숙(1941~)의 작업 <미친년 프로젝트>(1999~)를 통해 ‘미친년’의 존재를 일상화하고 그에 기꺼이 동화되기를 자처한다. 박영숙의 사진 속 ‘미친년’들은 위계관계에서 벗어나 피사체와 교감하는 박영숙의 태도를 통해 포착된 사진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가사일이라는 현실로부터 잠시 벗어나 꿈꾸는 우리네 어머니들로 보았다.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일탈을 꿈꾸기에 미친년으로 치부됐던 그네들의 몸짓을 2020년의 여성들이 이어받는 모습을, 박보나는 꿈꾼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7329.html     


태도를 이야기하는 박보나의 방식은 ‘실종’과 ‘죽음’을 ‘완성’과 ‘자유의지’로 바꿔낸다. 떨어지고 넘어지는 퍼포먼스를 주로 작업한 작가 바스 얀 아더르(표지 속 주인공!)에 대한 비평에서다. 그는 돛단배로 홀로 북대서양을 건너는 퍼포먼스 <기적을 찾아서>(1975)를 하다 실종됐다. 저자는 “애써 올라가지 않고, 애써 떨어지거나 넘어지는 것은 작가의 의지와 태도를 반영한다.”며 “아더르의 기존 제도에 대한 거부와 도전은 실종으로 완성된다. (중략) 결국 작가는 미술 제도를 빠져나가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고 보았다. 그 결말이 너무도 아름다워, 믿고 싶어진다. 결국 작품은, 아니 삶은 어떤 태도로 바라보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9428.html               



바다출판사는 단행본 외에도 ‘스켑틱’ ‘우먼카인드’와 ‘뉴필라소퍼’라는 새로운 잡지를 출간한다. 그 잡지들은 글의 질적인 훌륭한 만큼, 편집디자인도 시각적으로 훌륭하다. (그 비싼)일러스트도 많이 들어가고. 그래서일까. 이 책 역시 잘 디자인되어있다. 녹색과 검은색, 흰색이 배색된 표지 디자인은 깔끔하고 감각적이다. 바스 얀 아더르의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I'm too sad to tell you)>(1970)가 삽입된 표지는 완성도 높은 포스터처럼 보인다.

http://www.badabooks.co.kr/bbs/m/publishing_data_view.php?type=publishing&ep=ep801870536594c8ad1cd3b5&gp=all&item=B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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