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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cc May 28. 2021

흩어지거나 머무를 예술에 대하여

음악극 <구텐 아벤트>(2019)

사회와 괴리된 예술은 도태되거나,
자의식 과잉에 빠지게 된다



개인의 삶과 사회에서 예술의 의미를 묻는 ‘구텐 아벤트’는 작가이자 작곡가 게오르크 크라이슬러(1922~2011)의 ‘호이테 아벤트: 롤라 블라 우’(1971)에 다른 몇 곡을 더한 음악극이다.


주인공 롤라 블라우는 오페라 무대에 서기만을 꿈꾸는 성악가이자, 유대인 여성이다. 당장 눈 앞에 드러나지 않는 정치 문제 따위는 그녀의 관심 밖이다. 그러나 나치의 박해가 가시화되자, 롤라는 그가 사랑하던 극장과 연인으로부터 버림받는다. 권력 순응적인 오페라극장 관계자들은 롤라에게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를 통보한다. 작은 카바레 무대조차 허락되지 않는 상황. 롤라는 망명하듯 떠나 도착한 미국에서 세속적인 성공을 맛보기도 한다. 이윽고 나치가 패망한 후 스타가 되어 돌아온 고향 빈에서, 롤라는 오페라극장이 여전히 기회주의적이고 배타적임을 깨닫는다. 그는 주체적인 예술가가 되기 위해 '극장' 대신 자신만의 노래를 할 수 있는 '카바레'로 향한다.


롤라 블라우로 분해 열연을 펼친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은 작품에서 총 18곡을 독일어로 소화했 다. 언어유희적인 가사로 발음이 어려운 크라이슬러의 곡을 부르면서 관객들과 호흡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특히 관객과의 교감이 신명 나게 이뤄졌던 순간은 젊은 여성인 롤라와 슈미트 부인의 고집스러운 목소리를 번갈아 내며 ‘그 좋던 시절 다 어디 갔나’를 불렀을 때다. 모차르트의 소나타에 크라이슬러가 가사를 붙인 이 곡은 기득권자에게 유리하고 변화에 배타적인 빈의 행태를 풍자하며, 그들이 고수하는 전통도 태초엔 진보의 결과물이었음을 꼬집는다.


공연의 부제는 1인 음악극이지만, 장면 전환과 롤라의  감정적 흐름을 이끈 것은 피아노를 맡은 구자범이었다. 독일 하노버 오페라극장에서 지휘자로 활동했던 그가 작품의 구성과 편곡을 해 전달력을 높였다. 구자범의 피아노는 분위기에 맞춰 능숙하게 연기해내며 극적인 부분에서는 김선정의 목소리와 함께 절정으로 치달았다. 마치 무성영화에 음악을 싣듯 극 중간중간 장면에 어울리는 음향 효과를 표현하기도 했다. 구자범이 능청스럽게 전화벨 소리를 연주할 때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무엇보다 롤라 블라우의 이야기는 예술이 삶과 사회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사회와 괴리된 예술은 처음 롤라의 신세처럼 도태되거나, 빈의 오페라극장처럼 과잉된 자의식에 빠지게 된다. 공연이 끝나고 세종문화회관을 나왔다. 늦은 저녁 계단 아래로 천막 당사 지지자들의 카메라 불빛이 보였다. 극장은 이 계단에서 내려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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