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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n 03. 2024

어쩌다 보니, 플렉스

24년 5월에는

  작년 11월에 '5년 후'를 상상하며 쓴 글이 있다. 상상은 자유니까 하고 싶은 것들은 마음껏 적었다. 왕초보 영어 실력이면서 미국에서 강연회를 연다거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거나 온 가족이 책을 출간했다거나와 같은. 꿈은 높게 꿀수록 좋다지만, 과연 이게 가능할까 싶은 것들이었다. 그중에는 식기세척기와 로봇청소기와 스타일러와 같은 가전을 구입했다고도 쓰여 있었다. 글의 힘일까? 벌써 하나씩 이루어진 것이 있다.



  남편이 작년 말에 갑자기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난 후, 나 혼자서 집안일을 할 것이 걱정이 됐나 보다. 행동이 느린 탓에 설거지를 하려면 한 시간씩 걸리는 편이다. 그동안은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남편이 답답해하며 대신 설거지를 하고는 했지만, 이제 그럴 수가 없으니 식기세척기를 사자고 했다. (설거지를 하다가 시간에 쫓겨 괜히 화를 내거나 아이들을 채근할까 봐 걱정이 되었을 수도 있다.) 몇 달 전에 로봇청소기를 뜬금없이 샀던 터라 (채널을 돌리다가 홈쇼핑을 보던 남편이 전화를 걸었다. 로봇청소기가 나왔는데 좋아 보인다고 사자는 것이었다. 물걸레 청소가 은근히 귀찮았던 터라 반가웠다. 괜찮은 제품인지 검색한 후 바로 결제했다.) 식기세척기는 남편이 사자고 했지만 백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고민이 됐다. 로봇청소기에 식세기까지는 사는 건 부담스러웠다. 어차피 애벌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하는 김에 세제를 묻혀 설거지를 하면 되지, 굳이 식세기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갖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또 아니어서 휴일에 대리점에 가 보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하면서 고민을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 3월에 드디어 식세기를 샀다. 이로써 우리 집에 식세기, 로봇청소기, 건조기라는 3대 이모님이 들어오셨다. 쓰고 보니 만족, 대만족이었다. 문제는 소비의 맛을 보기 시작하니 자꾸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왔다. 미니멀을 추구한다던 나였는데. 정리정돈 수납 수업을 들으면서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사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였는데. 자꾸만 다른 것들이 나를 유혹했다.



  그중 하나는 커피 머신이었다. 등원하고 집에 오는 길이면 자꾸 마음이 허전했다. 아침에 아이들을 준비시키느라 바빴으니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마음을 채우고 싶었다. 좋아하는 단골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가 4천 원씩 하는 데다가 테이크아웃을 하는 곳에 가도 디카페인으로 바꾸면 2,3천 원씩 하니 매일 마시기에 은근히 부담이 됐다. 거품이 풍부하고 맛이 좋다는 커피 머신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검색해 보니 사용법도 관리법도 쉬운 것 같다. 디자인도 예쁘다. 머신을 놓을 자리도 주방에 마련했다. 고민 끝에 주문, 그리고 결제했다. 이제는 버튼 한번 누르면 언제든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하루 한 잔에 만족하던 나는 이제 아침에도 저녁에도 커피를 마시며 행복해한다. 

  또 다른 하나는 피아노였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지 못했는데, 그게 지금껏 아쉬웠다. 그 마음을 울이에게 전하며 8살 때부터 피아노 학원에 보냈지만, 재미를 못 느끼고 8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한 달만 쉰다는 것이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악기 하나는 배웠으면 좋겠는데. 울이도, 나도. 마음이 가라앉을 때 피아노 앞에 앉아 좋아하는 곡은 연주하면서 기분을 달래는 모습이 멋져 보일 것 같았다. 문제는 공간이었다. 이미 거실에는 티브이와 아이 책들과 청소기가 차지하고 있어 피아노가 들어갈 곳이 없었다. 아이가 보지 않는 책을 나눔 하기로 했다. 책장을 비우고 그곳에 피아노 자리를 마련했다. 하얗게 눈부신 피아노가 주문한 지 2주 만에 집에 도착했다. 울이는 피아노를 보더니 뛸 듯이 기뻐하면서 학교종, 나비야 같은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꿍이도 언니 옆에 앉아 이것저것 건반을 눌러본다.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가고 나면 나도 유튜브를 보면서 피아노 연습을 해본다. 조금씩 하다 보면 언젠가 쉬운 뉴에이지 한 곡 정도는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이 적기예요.

  진작 살걸. 이렇게 행복해질 줄 알았으면 진작 사는 거였다며 아쉬워하는 내게 누군가 말해주었다. 생각해 보니, 사고 싶을 때 바로 샀으면 지금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고민하고 애틋해하고 기다렸던 시간이 있었기에 이 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거였다. 


  오늘 아침, 혼자인 시간에 여유롭게 마음에 드는 캡슐을 골라 커피를 내렸다. 글을 쓰고 나서는 피아노 유튜브를 보면서 서툴고 느리지만 뚱땅뚱땅 건반을 즐겁게 눌러볼 생각이다. 지금 이 순간이 주는 만족감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 5월을 돌아보고, 6월을 계획하는 질문들

1. 24년 나의 목표는?
  - 꾸준히 읽고 쓰면서 평온한 내가 된다.

2. 5월은 (하고 싶은 것을 누리는 시간)이었다.
 - 5월은 해야 할 일에 조급해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에 더 마음을 썼다.

3. 지난 한 달간 내가 잘한 것은?
 - 아침 5분 저널을 작성했다. (저녁에도 간단히 쓰고 싶다.)
 - 5월 한 달 동안 감사일기 25번 작성했다.
 - 꾸준히 스트레칭을 10분씩 했다.
 - 정리정돈 수업을 들은 후 욕실과 냉장고를 정리했다. 
 - 김차윤 공동매거진을 시작했다.
 - 새벽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 워크어스 글쓰기 과제를 기한 내에 제출했다.
 - 인스타 게시물을 5개 올렸다.
 - 책을 12권 읽었다.

4. 지난 한 달간 아쉬운 부분은?
 - 아이 몸무게가 빠졌다. 아이가 먹는 것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
 - 마음이 조급하고 피곤하면 자꾸 화를 내게 된다. (심호흡을 10번 하자.)

5. 5월에 배우고 성장한 것은?
 - 쓰독 모임에 참여하면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재독을 해야겠다.
 -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6. 내게 기쁨과 만족을 주었던 것은?
 - 집안 정리를 조금씩 하고 있다.
 - 오랜만에 지인들과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고 차를 마셨던 시간. 환영받는 기분이었다.

7. 다가올 한 달은 어떻게 살아보고 싶은가?
 - 체력 관리와 글쓰기에 집중한다.(스트레칭 15분, 글쓰기 10줄)
 - 동생을 더 예뻐한다고 서운해하는 울이가 마음을 충분히 느끼도록 더 안아주고 표현해야겠다.
 
(질문 출처: 벨류비스 컴퍼니)



이미지 출처: Free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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