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그걸 써 보려고 합니다. 글로, 아주 소중하게.
- 김지윤,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 작가의 말 중에서
책날개에 적힌 작가의 말부터 마음을 끌어당겼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유행하는 힐링 소설이겠거니 생각하고 지나쳤었다. (힐링 소설을 여러 권 읽어서 새로운 책을 읽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군가 이 책을 현실적인 힐링 소설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고 '현실적'이라는 말에 끌렸다. 동화에서나 볼 법한, 아름답고 고운 이야기보다 옆 동네 누군가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사실적인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간다. 책을 펴고 날개를 읽자마자 이 책과 작가의 매력에 빠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글로 써 보겠다니. 작가의 마음씨가 얼마나 고운 걸까.
책장을 넘기자마자 글 속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아내와의 추억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장 영감, 5년째 글을 쓰고 있지만 보조 작가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여름, 관객 없는 버스킹에 지쳐가는 가수를 꿈꾸는 하준, 잘 나가는 의사이지만 아들과 아내를 외국으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로 외롭게 지내고 있는 대주.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아렸던 인물은 미라였다. 현실적으로 쪼들리지만 육아를 하느라 일을 할 수 없는 그의 처지가 안타깝고 서글펐다. 전셋값 오천만 원을 올려달라는 갑작스러운 말에 여기저기 전화를 하지만 차마 돈을 빌려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괜히 남편과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미라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빙굴빙굴 세탁소에서 사람들은 다이어리를 보고 고민을 쓴다. 그것을 읽은 누군가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고민에 대한 답변을 써준다. 그러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다. 누군가의 한 마디가 괴롭고 힘든 이에게는 커다란 힘이 되고 응원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기만 해도 힘들었던 이는 자신을 짓눌렀던 묵직한 괴로움을 조금 덜어내게 되는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고 위안이 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면서 아쉬워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소설의 결말과 비슷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의 괴로움과 힘듦에 지쳐 바닥까지 주저앉았을 때 결국에는 모두가 행복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안다면 잘 이겨낼 수 있을 텐데. 포기하고 좌절하지 않고 한 번 해보자고 몸을 일으킬 수 있을 텐데. 소설 속에서 다이어리에 고민을 적고 답변을 보면서 힘을 얻었던 인물들처럼, 현실에서도 누군가 진심으로 마음을 알아주고 말을 들어준다면 힘이 생길 것 같다. 나부터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너그럽고 씩씩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디에서든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빙굴빙굴 빨래방' 같은 곳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 때는 옆 사람에게 잠시 기대기도 하고, 하염없이 마음 놓고 펑펑 울 수도 있는. 누군가는 슬퍼하는 이의 곁을 묵묵히 지켜주고 어깨를 내어줄 수도 있는. 그런 곳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저마다의 고민으로 눅눅했던 마음이 뽀송뽀송해지는 곳. 여기는,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