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은 원래 바쁜 거겠지. 짧은 시간 안에 할 일들이 꽤 많다. 사소하고 자잘한, 이를 테면 빨랫줄에서 걷어 놓은 바삭하고 보송한 옷가지들을 개어서 서랍에 넣어두는 것이나 설거지를 끝내고 식탁을 닦고 싱크대에 놓인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나 식탁 주변에 떨어져 있는 음식 부스러기를 치우는 것과 같은, 해도 표가 나지 않고 안 하면 금세 지저분해지는 그런 집안일들을 후딱 해치우느라 종종거리며 다니던 중이었다. 그러다 무심코 던진 시선에서 평소와 다른 어떤 것들을 발견하고 웃음이 피식 날 때가 있다.
이건 또 왜 여기 붙어 있는 거지?
밥을 먹고 아이들에게 먼저 양치를 하라고 말한 뒤 설거지를 끝내고 나서야 화장실에 들어갔다. 칫솔을 들어 치약을 묻히다 평소와 다른 것이 눈에 띄었다. 세워져 있어야 할 꿍이의 칫솔과 칫솔꽂이가 가로로 서 있다. 아마 칫솔꽂이 밑에 바닥과 달라붙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벽에도 떨어지지 않는지 궁금해 붙여둔 것일 게다. 덕분에 칫솔은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추락할 듯 말 듯 위태위태하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 내가 칫솔에 손을 살짝 대자마자 누군가 봐주길 기다렸다는 듯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바닥에 툭 떨어졌다. 칫솔을 주워 물에 여러 번 헹구면서 싱거운 웃음이 났다.
벽에 그림을 그리면 안 된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아쉽게도 방마다 한쪽 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의 크기는 다양하다. 8절 도화지만 한 크기인 것도 있고, 수줍게 백 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인 것도 있다. 서너 살 때는 그림의 크기가 과감했고, 여덟 살쯤 되니 엄마의 눈치를 보고 그림이 보일락 말락 작아졌다. 스케치북이 집에 충분하고, 한쪽 벽을 채울만한 크기의 커다란 자석 칠판이 있음에도 벽에다 그림을 그리는 심리는 왜 생기는 걸까. 책이든 벽이든 어떤 것이든, 다른 무언가가 묻는 걸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미 아이들이 그려 버린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원래부터 있었던 무늬겠거나 생각할 수밖에.
주방 벽에 생긴 무늬
그러고 보면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저걸 어쩌지 싶은 자잘한 일들이 떠오른다. 간식으로 요거트를 먹으라고 줬더니 손바닥에 묻혀 얼굴에 마사지를 하고 있거나 땀띠가 나서 바르라고 준 알로에 로션을 정성껏 바닥에 바르고 있거나 문 손잡이에 양면테이프를 잔뜩 발라두어서 두어 시간 동안 테이프를 떼느라 낑낑댔던 것들. 뒷정리를 하다 보면 은근히 화가 치솟는다. 자꾸만 사소한 일에 드래곤 엄마가 되고 만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지.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커가면 엉뚱해서 웃음이 나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가로로 눕힌 칫솔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아이들의 엉뚱함을 기발함으로 인정해 주고, 같이 웃으며 정리하는 엄마가 되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슬쩍 든다. 아이가 일을 만들면 또 화부터 버럭 내겠지만, 아무튼 어쨌든 그런 다정한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쉽지 않겠지만 오늘도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