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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04. 2023

초코송이가 먹고 싶었어

그때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

  "어머니, 까칠이는 초코송이를 만지작거리다 그대로 내려놓고 왔어요."

  어린이집 과자 파티가 끝나고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까칠이가 담은 접시에는 엄마가 보내준, 집에서 먹던 유기농 과자들뿐이었다. 선생님의 말에는 안쓰러움이 숨겨져 있었다. 아이를 지나치게 통제하는 엄마에 대한 힐난도 담겨 있었을 거다. 친구들은 달콤한 간식을 마음껏 먹는데, 까칠이는 엄마가 싫어할까 봐 마트표 과자의 유혹을 참아내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까칠이가 몸에 나쁜 것들을 안 먹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먹고 싶은 것을 참을 줄 아는 기특한 4살 아이라 여겼다. 그때는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색소 가득한 사탕과 캐러멜을 받을 때가 있다. 아이는 나를 쳐다보고 먹어도 되는지 허락을 받았다. 3살일 때는 "우리 애는 아직 안 먹어요."라고 먼저 말하거나, 먹어도 되는지 배려 섞인 물음을 하는 엄마들 덕분에 마트 과자를 먹는 일이 없었다. (까칠이는 5살이 되어서도 백미나 고구마로 만든 떡뻥을 좋아했다. 동생도 외면하는 쌀과자를 8살이 된 지금도 가끔 먹는다.) 4살이 되자 놀이터에서 놀다가 친구에게 마이쭈나 말랑카우를 받을 때가 있었다. 까칠이는 엄마의 허락은 받은 뒤 마이쭈의 껍질을 뜯고는 몸을 뒤로 돌려 곧바로 입에 넣었다. '쟤가 왜 저러나.' 엄마들이 까칠이가 급하게 먹는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여겼다. 곰곰 생각해 보니, 까칠이는 엄마가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시선이 머물지 않는 곳에서 재빨리 입에 넣고는 다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았다. 엄마를 속상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4살 아이의 마음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과자를 안 먹을 수는 없는 일. 아이에게는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떡뻥이나 우리밀로 만든 심심한 맛의 과자를 줬다. 어쩌다 친구들이 준 마트 과자를 먹게 될 때면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었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었다. 우리 집에서는 텔레비전도 켜지 않았다. 아이에게 나쁘다는 말에 유튜브는커녕 아이를 찍은 영상도 가끔 보여줬다. 유난을 떠는 예민 맘이라 불리더라도 까칠이의 건강을 위해 이토록 노력하는 내가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다. 다른 엄마들이 틀린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잠든 후, 남편과 피자나 치킨을 먹을 때가 있었다.

  "애들이랑 같이 먹고 싶다."

  남편은 몸에 조금 해롭더라도 함께 먹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했다. 그럴 때면 눈을 흘기며 어린아이들에게 첨가물이 얼마나 해로운지 아냐며 받아쳤다. 까칠이에게는 최대한 늦게 주겠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내 생각이 옳다고 믿었고, 남편과 아이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다.




  아이가 크다 보니 내 고집만 부릴 수 없었다. 아이가 속상해하고 서운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강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도 필요했다. 찾아보면 주위에 해로운 것은 많다. 과연 언제까지 어느 선까지 엄마가 지켜줄 수 있을까. 길을 잃은 것처럼 막막하고 어렵다. 아이도 친구들과 과자를 나눠먹는 기쁨을 알아야 하고, 텔레비전을 보며 좋아하는 캐릭터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즐거움을 엄마가 다 막아버릴 수는 없다.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해로운 것을 막아주고 싶다. 즐겁지만 해롭고, 건강하지만 재미없는 것 사이에서 엄마가 서야 할 곳이 어디인지 고민한다. 지금의 선택이 미래의 내가 보았을 때 옳은 선택이 되기를 바라면서. 언제부턴가 마트에 가서 자연스레 과자를 고르고, 아이가 먹고 싶어 할 때면 라면을 끓여주기도 한다. 아이와 내가, 우리 가족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까칠아, 우리 초코송이 사러 갈까?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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