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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29. 2023

새벽이면 찾아옵니다, 아니야 공주님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날을 기다립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오늘도 잠은 다 잤다. 도대체 뭐가 아닌 걸까. 까칠이는 눈도 뜨지 못한 채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아니야’를 외치며 울었다. 무슨 일인지 아무리 물어도 답이 없다. 그저 아니야만 반복할 뿐이었다. 매일 밤 반복된 울부짖음에 할 수 있는 것은 안아주는 것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눈물이 났다. 집이든 할머니댁이든 여행지에서든, 3살 까칠이는 새벽이면 ‘아니야 공주님’이 되었다.     


  처음에는 무서운 꿈을 꿨나 싶어서 아이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30분, 1시간을 달래도 악을 쓰는 울음이 이어졌다. 뭐가 문제일까. 혹시 화장실에 가고 싶은 건 아닐까. 까칠이는 변기에 앉아서도 그저 아니야만 외쳤다. 새벽에 나가 밤에 퇴근하는 남편은 잠을 편히 잘 수 없어 괴로워했다. 그저 악을 쓰며 우는 까칠이에게 남편과 나도 왜 그러는 거냐고 결국에는 소리를 질렀다. 울다가 자기도 모르게 쉬가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쉬였다. 쉬를 하면 되는 거였다. 문제는 시간이 너무나 많이 걸린다는 것.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잠이 깨면 같이 화장실에 가면 되는 단순한 일인데, 왜 울다가 겨우 쉬를 하고 자는 걸까? 어떻게 하면 우리 가족은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까?     

(출처: 픽사베이)

  인터넷에 아이의 증상을 검색해 보았다. 야경증. 자다가 일어나서 갑자기 울부짖는 증상으로 수면 후 2-3시간 후에 일어나고 4살 때 가장 많다는 것. 한약으로 치료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했다. 클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 해결 방법이 없다니, 까칠이는 좀더 자랄 때까지 계속 이렇게 울어야 하는 걸까.   


  까칠이는 두 돌 무렵 배변 훈련을 시작했다. 여러 육아서와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를 정리하면, 아이의 속도에 맞게 가되 평균 24개월 무렵부터 배변 훈련을 많이 한다고 했다. 까칠이는 그맘 때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고 싶어했다. 변기에 앉아서 성공을 하자 엄마는 기저귀를 떼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기뻐했다. 우연한 성공이었을까. 기저귀를 벗기고 팬티를 입혔지만 변기에 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이가 실수를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갔다. 언제 아이를 씻기고, 흥건해진 바닥을 닦고, 젖은 옷을 빨아야 하나. 겨울 이불까지 젖게 되면 더 절망스러웠다. 힘들고 지쳤다. 아이가 바지에 쉬를 하면 한숨부터 나왔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이에게 빨리 화장실에 갔어야지, 핀잔을 주기도 했다. 화장실에 가서 성공하는 횟수가 늘어갔지만 실수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눈치가 빠른 아이였기에 엄마의 표정과 몸짓은 아이에게 또 다른 압박감으로 다가왔을 터였다.     


(출처: 픽사베이)

  까칠이가 어린이집에서 6개월 넘게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하원하기 전 물병의 물을 비우고 와서 그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뛰어놀다 보면 목이 말랐을 텐데, 왜 안 마셨을까. 어린이집에 연락을 드리고, 상담을 신청했다. 담임선생님은 까칠이가 화장실에서 실수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놀이에 푹 빠져 있다가 급하게 화장실에 들어간 까칠이는 미처 바지를 내리기도 전에 쉬가 나와버리자, 화장실 문을 잠근 채 펑펑 울었다고 했다. 또 실수를 하고 싶지 않으니 물을 안 마셨던 거였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이 아려왔다.     


  밖에 나갔다 오면 바로 씻어야 하고, 손을 씻지 않고 간식을 먹으면 불안했다. 아이들이 거실과 방에 장난감을 펼쳐 놓으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깨끗하고 깔끔한 것에 온 신경을 쏟던 그때, 까칠이가 실수한 오줌까지도 나에게는 완벽히 깨끗하게 만들어야 할 불결한 대상이었다. 내가 가진 강박으로 나조차도 힘들고 지쳤던 그때였다. 아이의 표정과 생각은 미처 볼 수 없었다. 까칠이는 눈치가 빨라 언제 엄마가 화를 내고 힘들어하는지 알았던 것 같다. 엄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실수를 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잘 때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펑펑 울면서도 꾹 참고 있었나 보다.     


(출처: 픽사베이)


  5살이 되자 까칠이의 아니야 외침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까칠이가 놀고 있을 때, 예전 사진을 보여주면서, 아니야 공주님이었던 것이 기억나는지 묻는다. 까칠이는 전혀 그런 적 없다는 듯 배시시 웃는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자란다. 아이 덕분에 엄마의 세상도 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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