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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31. 2023

햇빛 가리개의 마음

마음이 있는 세상을 바라봅니다

  점심을 먹으러 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앞에는 남편과 내가, 뒤에는 순둥이와 까칠이가 앉아 있었다. 해가 뜨거워 아이들 창문에는 햇빛가리개를 해두었다. 아이들은 카시트에 오래 앉아 있는 게 불편했던지 아웅다웅 다투다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둘 다 그만해.” 남편이 답답한지 창문을 반쯤 다 내렸다. 갑자기 센 바람이 차 안으로 휙 들어왔다. 햇빛가리개는 바람을 타고 창문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순식 간에 일어난 일이라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든 물건인데 아까웠다. 도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하늘로 날아가버린 것을 찾을 수는 없는 일. 이참에 새로 하나 사면 되지. 그러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출처: 픽사베이)

  뒷자리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순둥이 콧구멍이 두어 번 씰룩씰룩했다. 코끝이 붉어지고 이내 눈물이 고이더니 뚝뚝 떨어진다.

  “햇빛가리개 찾아줘.”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밖으로 날아간 것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찾아주고 싶어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순둥이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를 바라며, 천천히 설명했다. 까칠이도 멀리 날아갔다는 사실을 동생이 이해할 수 있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햇빛가리개 찾으러 가자.” 순둥이의 눈빛은 간절했다.     




  식당에 도착했으니 일단 밥을 먹기로 했다. 배가 부르면 순둥이의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면서. 금방 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밥을 먹으면서도 자꾸 생각이 나는지 눈물이 고이곤 했다.

  “엄마가 인터넷에서 똑같은 거 찾아볼게. 새로 사면 돼.”

  “아니, 햇빛가리개가 지금 밖에 혼자 있잖아. 찾아줘야지.

  순둥이는 어디선가 낯선 곳에서 떠돌고 있을 물건이 안쓰럽고 안타까웠던 거였다. 잃어버려서 속상한 게 아니었다. 6살 순둥이는 물건에도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얀 김이 나는 뜨거운 음식을 집게로 잡으면 집게가 괜찮은지 묻는다. 싫어하는 반찬을 집어 먹으면 먹어줘서 기뻐하는지 묻는다. 인형을 포근하게 안아주면 행복해한다고 생각한다. 엄마와 언니의 마음도 잘 헤아린다. 화가 나 언성이 높아질 때는 슬그머니 다가와 “엄마, 괜찮아.” 내 손을 잡아주거나 언니 곁에서 서성인다. 여리고 걱정스러운 눈빛과 마주칠 때면 지나치게 화를 냈다는 걸 깨닫고 진정하기도 한다.      




  밥을 다 먹은 후 햇빛가리개를 찾아보기로 했다. 식당 근처에서 날아갔으니 어쩌면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순둥이 손을 잡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비슷한 물건을 보고 몇 번 달려가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실망한 순둥이는 다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어, 저기!”

  남편과 까칠이가 동시에 한 곳을 가리켰다. 도로 한 구석에 파란색 햇빛가리개가 멀리 가지 않고 구겨진 채 쉬고 있었다. 먼지를 탈탈 털어서 아이에게 건넸다. 순둥이는 그제야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햇빛가리개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알았다면 기쁘지 않았을까? 햇빛가리개는 여전히 순둥이 창문에서 햇빛을 가려주고 있다.     

햇빛가리개야, 순둥이를 다시 만나서 반가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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