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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07. 2023

거실 슬리퍼를 6켤레 구입한 이유

드디어 아래층에서 인터폰이 울리고

  "아빠다!"

  "우리, 숨자!"

  삐삐삐삐. 현관문 도어록을 여는 소리가 들리자 까칠이와 순둥이는 씨익 웃으며 눈빛을 교환했다. 남편이 들어왔을 때, 화목한 여느 집처럼 현관으로 나가 웃으며 맞이하고 싶었다. 그럼 남편은 피곤한 것도 잊고 행복한 미소를 지을 거다. 그저 상상일 뿐이었다. 아빠한테 인사하러 가자고 아이들을 설득해 봐도, 내 얘기는 허공에서 떠돌았다. 아이들은 이미 후다닥 집안 어딘가로 숨어버린 후였다. 남편은 그 의도를 간파하고 충실히 역할을 해냈다. 너무 잘 숨어서 어디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연기를 시작했다.



  "우리 까칠이랑 순둥이가 어디로 갔지? 어디 숨었을까? 전혀 안 보이네." 안방 침대 이불 속에서 아이들이 웃음을 참으며 들썩들썩했다. 남편이 다른 곳에서 헤매는 척을 하자, 순둥이가 먼저 이불에서 나와 "서~프라이즈!" 외치며 까르르 웃었다. 뒤이어 나온 까칠이는 이번에는 아빠가 찾기 쉬운 곳에 숨겠다고 다른 방으로 달려갔다.

  이 정도에서 놀이가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는 웃으며 잠들었을 텐데.


  아랫집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밤이잖아. 뛰면 안 돼."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오늘따라 아이들이 우당탕탕 뛰어다녔다.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여러 번 해도 신이 나서 난리다.

  "그만 뛰어, 그만 뛰라고 했어. 아래층에서 시끄럽다고 했지!" 걱정되는 마음에 같은 말을 반복했고, 아이들은 듣지 않았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 나는 결국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그만 뛰라고, 좀!"


  그 순간, 낯선 멜로디가 들렸다. 모두가 하던 것을 멈추었고, 눈은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인터폰. 거실 인터폰이 울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남편과 내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스쳤다. 아래층일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이 시간에 연락이 올 곳은, 아래층밖에 없다. 수화기를 들 자신이 없었던 나는 남편에게 받으라고 눈짓을 했고, 그는 조심스럽게 인터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아래층인데요, 너무 쿵쿵거려서 시끄러운데 조용히 좀 해주세요."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낮고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에는 화가 담겨 있었다. 아마도 참고 참다가 연락했을 거다. 늦은 시간에 소음을 견뎠을 아래층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고, 층간소음의 가해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미안함과 부끄러움, 속상함에 휩싸인 나와 남편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아이들을 나무랐다. "그러게 뛰지 말랬잖아. 아래층에서 연락 왔지. 뛰면 안 돼!" 처음에는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조심하는 듯 보이더니,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발걸음 소리가 쿵쿵 났다. 아빠와의 놀이가 좋았던지 다시 숨바꼭질을 시작하고 있었다.


  "엄마가 뛰지 말랬지! 뛰면 안 된다고 했잖아. 이제 숨바꼭질 금지야."

  "뛰지 말라고 했잖아, 걸어 다니라고!"

  다정하고 온화한 남편도 아래층의 연락 후 평정심을 잃었다. 결국 까칠이와 순둥이는 큰소리에 놀라고 서러운지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언성을 높이고 무서운 표정으로 야단을 치니 아이들도 속상했을 것이다.

  "엄마 아빠, 진짜 싫어!"

  늦은 밤,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끼쳤다는 것, 울다가 잠든 아이들의 표정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아래층에 죄송하다고 찾아가야 하나. 정작 우리 집 위층에서는 쿵쿵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었다. 나만 왜 참아야 할까, 억울한 마음도 슬그머니 들었다. 어찌 됐건, 우리 집이 더 이상 층간소음 제공자가 될 수 없었다.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계속 주의를 주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 해결 방법이 필요했다. 평소 아이들에게 발소리를 조심하라고 주의를 자주 주었고, 순둥이는 뒤꿈치를 들고 걷기도 했기에 아래층에서 받은 연락은 더 크게 다가왔다. 억울한 마음이 들려고 했다. 아니야, 오늘 좀 심하긴 했지. 왜 숨바꼭질을 해서는. 아이들에게 장단을 맞춰준 남편이 얄밉게 느껴졌다.


  휴대폰을 꺼내서 층간소음방지 슬리퍼를 검색했다. 슬리퍼를 주문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것은 얇았고, 어떤 것은 미끄러웠고, 어떤 것은 디자인이 이상했다(아이들은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 신지 않는다. 신어라, 싫다, 싫어라, 싫다, 반복되는 신경전을 벌이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모양을 꼭 찾아야 했다). 후기를 꼼꼼히 읽어보며 도톰하고 폭신하고 예쁜 모양의 슬리퍼를 찾아 헤맸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냈다. 우리 가족 4켤레, 손님 것도 2켤레. 슬리퍼를 놓아둘 신발 정리대까지 모두 주문 완료.




  그렇게 우리 집은 다시 평화로울 거라 생각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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