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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09. 2023

숨바꼭질을
집에서 했을 때 생기는 일

  숨바꼭질이 문제였다.


  숨바꼭질 하다가 아래층의 연락을 받았고, 다음날부터는 자그마한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들은 상어슬리퍼가 마음에 드는지 잘 신고 다녔다. 슬리퍼를 신고 걸으면 걸음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슬리퍼를 벗고 놀 때도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터졌다.

  "쿵쿵 하지 말랬지. 아래층 시끄럽잖아."

  엄마가 화를 내자 놀란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진짜 싫어!"

  아이는 큰소리로 외치고는 방에 들어가서 울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도 그저 쿵쿵소리가 났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과할 정도로 눈치를 봤던 건 아닐까, 아이를 너무 닦달했나, 물 먹은 솜처럼 마음이 눅눅해졌다. 그렇게 몇 번이고 아이와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다.




  며칠 조용한 듯했다.

  저녁 시간, 아이들이 식탁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었다. "띠띠띠띠" 남편이 현관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순둥이는 숨바꼭질 금지령에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까칠이는 엄마의 말을 잊었는지 도어록 소리에 눈이 반짝였다.

  "숨자!"

  말릴 틈도 없이, 까칠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바람에 나무 의자가 순둥이 오른 위로 떨어졌다. 그 의자는 아침에 꺼내둔 것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위험하다고 넣어두었던 것을 이제는 써도 되겠지 생각했었다. 작고 낯선 의자를 본 아이들은 식탁 근처로 가져와서 발 받침대로 사용했다. 아이들이 사용하도록 그대로 두었다. 뭐, 단순한 발 받침대인 의자니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딱딱하고 무거운 것을 가지고 노는 것이 조금 불안했지만,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허용하는 내가 좋은 엄마가 된 듯 착각도 했었다. 그러던 차에 까칠이가 숨겠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잘 미끄러지는 그 의자는 순둥이 발로 떨어져 버렸다. 의사를 존중하는 것과 위험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다니, 이게 좋은 엄마라고? 아침에 그걸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순둥이는 무딘 편이다. 예방접종을 하러 가서 주사바늘이 들어가도 그저 담담했다. 까칠이가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것을 어른 둘이 잡고 겨우 주사를 맞았던 걸 생각하면, 순둥이는 팔만 살짝 잡았을 뿐, 엄마도 간호사 선생님도 심지어 본인마저도 편안하게 예방접종을 했다. 길을 가다 넘어질 때에는 눈물 대신 두 손으로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런 아이가 이번에는 목이 터져라 거실이 떠나가라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었다.


  순둥이 세번 째, 네번째 발가락에는 피가 맺혀 있었다. 아프다고 손을 못 대게 했다. 아이 발에 무거운 의자가 떨어졌으니 무엇보다 뼈가 걱정이 됐다. 저녁 6시 50분. 아직 정형외과가 연 곳이 있을까? 급하게 병원을 검색해봤지만 모두 진료시간 마감이다. 응급실에 가야 하나, 마음이 조급해졌다. 일단 침착하자. 먼저 아이 상태를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순둥이는 걷는 데 별 문제가 없어보였다. 발가락은 조금 아프지만 괜찮다고 했다. 진짜 괜찮은 건지 확인을 하러 다음 날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상황이 진정되자, 섣불리 방으로 뛰어간 까칠이가 원망스러웠다. 까칠이는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 동태를 살폈다. 나와 남편은 약속한 듯 원인을 제공한 까칠이에게는 아무 말 않고 순둥이의 발을 걱정했다. 마음 속으로는 '너, 엄마가 뛰지 말랬지. 왜 뛰어가서 이런 일을 만들어. 동생 발가락이 다쳤잖아. 안 뛰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지. 왜 엄마 말을 안 들어! 동생 발가락 부러졌으면 어떡할 거야.' 둑에서 물이 터져나오듯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 말이 밖으로 튀어나와 까칠이에게 또다른 상처를 줄까 봐 꾹꾹 눌렀다.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눈치 빠른 까칠이는 자기 잘못이라고 할까 봐 불안한지,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나 때문에 동생 다친 거 아니야. 나는 조심히 뛰어갔는데."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말해도 돼."

  동생에게 사과를 하거나 괜찮냐고 묻기라도 했으면 화나는 마음이 가라앉았을 거다. 동생이 자기 때문에 다쳤을까 봐 불안하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변명하는 모습에 속이 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까칠이도 어린 마음에 표현을 못했을 뿐, 동생이 다쳤을까 봐, 엄마아빠가 혼낼까 봐, 불안하고 걱정됐을 거다. 그런 까칠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나는 그저 차갑고 냉담하게 대답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정형외과에 갔다. 여러 번 각도를 달리해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네 번째 발가락이 골절되었다고 했다. 의사선생님은 발가락을 이리저리 만져보면서 많이 아팠을 텐데 괜찮은지 물었다. 발톱 부분에 부딪쳐서 발톱이 빠질 수도 있고, 발가락이 많이 부을 테니 얼음찜질을 해주라고 했다. 3주 간 깁스. 이번 주는 엄마랑 집에서 쉬어야겠다.


  작은 발에 깁스를 하려고 붕대를 감고 깁스 신발까지 신으니 마음이 짠해졌다. 신발이 커서 찍찍이를 꽉 조여서 붙였다. 불편하지만 3주만 신으면 괜찮을 거야. 순둥이는 걸어다니기 불편할 텐데도 기분 좋게 웃었다. 평소처럼 나를 보며 "엄마 안아줘." 얘기했다. 그래, 이번에 엄마가 많이 안아줄게.




  순둥이는 집에 오자마자 깁스를 했다며 자랑하듯 오른발을 들어 보여주었다.

  "언니 때문에 나 다친 거 아니야. 의자가 혼자서 넘어져서 그런 거야."

  6살 아이가 언니의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 걸까. 아이의 너그러운 말에 그동안 속상하고 차가워졌던 마음이 녹았다. 오늘따라 햇볕이 따스하게 비친다.


순둥이의 새 신발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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