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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27. 2023

이건 사기결혼이야

드디어 디데이, 2주 후에 만나요

  꿈꿨던 결혼은 평범했다. 다정한 남편과 귀여운 아이들과 매일 재밌게 즐겁게 보내는 것. 


  남편의 회사는 이동이 잦다. 2, 3년 기간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기도 하고, 해외에 갈 수도 있다. 남편과 결혼을 서둘렀던 것도 브라질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을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랬으면서도 정작 결혼 후에 우리가 주말부부를 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은 결혼을 한 후, 한 달여 만에 5시간 거리인 지역으로 발령이 났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황했다. 회사 특성상 국내 여러 곳으로 지역 이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생각하게 되었다. 

  "이거 사기 결혼 아니야?"

  주말에 내려온 남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함께 있으려고 결혼을 했는데 느닷없이 혼자 지내야 한다는 것에 진심으로 슬펐다. 출근 준비를 하고 바쁘게 하루를 보내다 퇴근을 할 때면 혼자 있는 게 무서웠고, 겁이 났다. (서른 한 살의 어리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이러려고 결혼한 게 아닌데,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불이 꺼진 집에 들어가서 혼자 밥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그저 서글펐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는 중이다.

  

  숟가락, 젓가락, 밥그릇, 국그릇, 이불, 베개. 챙길 것이 꽤 많다. 빠뜨리지 않았나 고민하는 나를 보면서 남편은 필요한 것들은 마트에서 사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혹시 부족할까 봐 2개씩 챙기려는 나와 1개씩이면 충분하다는 남편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편하게 지내려면 여러 개 있는 게 좋을 텐데. 원룸에서 지내려면 밥솥을 사야 한다니까, 나중에 집에 돌아오면 짐만 된다면서 밥을 먹을 때 식당에 가거나 햇반으로 해결하겠단다. 걱정이 된다. 아프면 어떡하나, 적응하느라 힘들지는 않을까. 자꾸 마음이 쓰인다.


  어제 저녁시간이었다. 뜬금없이 남편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공표했다.

  "아빠가 내일 순천으로 가면 이제 엄마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너희들이 도와줘야 해. 엄마 힘들지 않게."

  그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아이들은 아빠 말 사이사이 차례로 물을 뜨러 가고, 회사 나쁘다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아빠만 진지하고 아무도 진지하지 않은 분위기에 피식 웃음이 나오고 눈물도 나올 뻔했다. 

  "엄마 힘들지 않게, 화나지 않게, 너희들 진짜 말 잘 들어야 해." 

  남편이 간절하게 말했다. 



  

  "바쁠 예정이야."

  걱정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고민 없이 내년에 육아휴직을 연장하기로 했다. 읽고 쓰고 운동하고 영어공부도 하고. 하루가 많이 바빠질 것 같다. 남편과 주말부부를 하는 동안,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하며 재미나게 보내볼 참이다. 


  오늘 아침 9시, 남편이 순천으로 출발한다. 조금, 실은 많이 헛헛하고 슬프다. 자칫 방심하면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도 같다. 이따 남편을 배웅하고 나면, 제일 좋아하는 단골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부드러운 디카페인 커피도 마셔야겠다. 새로운 일상을 기대하면서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가득 채우며 서로를 기다려볼 참이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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