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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24. 2024

물에 빠진 또띠아를 구하라

  또띠아를 3개째 만들러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 국물 속에 또띠아와 타코미트, 옥수수, 양배추가 둥둥 떠 있었다. 살사소스와 나초치즈는 물과 하나가 되어 진한 밀크티 색깔 육수를 만들어냈다. 엄마가 또띠아를 샤부샤부 육수 속에 통째로 넣은 것이다. 왜 저게 육수 속으로 들어간 거지? 당황스러웠다. 또띠아는 국물에 눅진히 절여져 흐물흐물했다.


  엄마, 이거 국물에 왜 넣었어?

  익혀 먹는 거라매. 그래서 넣었지. 익혀 먹는 거 아니야?

  엄마, 여기 넣으면 어떡해! 또띠아도 못 먹고 국물도 색이 이상해졌잖아. 이건 익혀먹는 거 아니야. 바로 먹으면 되는 거야.

  다시 가서 새로 만들어오면 될 것을, 괜히 엄마에게 말을 쏘아댔다. 엄마는 얼마나 무안했을까.




  오랜만에 딸네 집에 놀러 오신 부모님을 모시고 샤부샤부를 먹으러 갔다. 12시에 갔더니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많아서 겨우 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부모님께서 자리에 앉아계시는 동안 접시에 채소와 어묵과 여러 음식들을 샐러드바에서 가져다 날랐다. 모처럼 착하고 다정한 딸 역할을 하고 싶었던 나는 부모님께 또띠아를 만들어드리기로 했다.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엄마 아빠는 또띠아가 처음일 테니 새로운 음식을 맛 보여드리고 싶었다. 샐러드바에 가서 접시를 두 개 꺼낸 뒤 또띠아를 얹고 채소와 고기와 소스를 올렸다. 양손에 한 접시씩 든 뒤 부모님께 가져다 드렸다. 엄마가 국물에 담긴 쌀국수를 앞접시에 건져내며 물으셨다.

  이거 익혀 먹는 거 맞제?

  응. 맞아 맞아.

  엄마 아빠께 또띠아를 한 접시씩 건네드리고는 내 것을 만들러 샐러드바로 갔다. 또띠아가 엄마아빠 입맛에 맞을까 궁금해하면서 자리로 돌아왔는데. 아뿔싸. 또띠아가 활짝 펴진 채 샤부샤부 국물에서 수영 중이다. 엄마가 익혀 먹는 거냐고 물었던 건 쌀국수가 아니라 또띠아였던 것. 서둘러 또띠아와 잔해들을 건져냈다. 엄마아빠는 머쓱하게 웃었다.

  아빠도 국물에 넣으려던 참이었어.

  엄마가 재빨리 말했다.


푹 익혀서 건져낸 또띠아


  이건 누구를 탓할 수 없다. 또띠아를 드시는 걸 보고 조금 이따가 갈걸. 사람이 많아 북적거리는 가게에서 얼른 움직이려던 게 이런 일을 만들었다.


  엄마, 다시 만들어줄까?

  아니, 안 먹을래.

  엄마는 배가 부르다며 또띠아를 거절하셨다. 정말로 배가 부르셨던 건지, 또띠아를 물속에 빠뜨린 게 무안했던 건지, 딸내미가 자꾸 왔다 갔다 하는 게 신경 쓰이셨던 건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물속에서 건져 올린 흐물거리는 또띠아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 아빠께 다정한 딸이 되고 싶었지만, 더 친절했어야 했다.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딸이지만, 엄마 아빠와 해보고 싶고, 먹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 아빠가 꼭 가고 싶어 하셨던 울릉도에도 가보고 싶고 온 가족이 다 함께 해외여행도 해보고 싶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도 좋지만 낯설고 맛난 음식들도 함께 먹어보고 싶다. 시간과 돈에 얽매여하지 못했던 가족여행. 문득 해보고 싶은 것들을 쭉 적어서 하나씩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어떤 걸 먹어볼까, 어디로 살짝 떠나볼까, 기분 좋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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