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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Dec 15. 2023

칠천 원짜리 성탄절 트리

트리를 준비하는 복잡한 마음

  11월 말이 되면 캐럴이 들려오고 트리가 곳곳에 보이기 시작한다. 길을 걷다 보면 가게마다 성인 남자보다 훨씬 큰 대형트리부터 무릎까지 오는 자그마한 트리까지, 은빛금빛 구슬과 반짝이는 전구를 매달고 연말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12월이 되면 트리들은 어디에 다 숨어 있다가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지.

  크리스마스가 별 건가 싶으면서 캐럴에 어깨가 들썩이고, 트리에 마음이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12월 25일이 일 년 중 보통의 하루일 뿐임에도 왠지 이날만큼은 좀더 특별하고 즐겁게 보내고 싶어진다. 한 해가 끝나간다는 아쉬움과 미련을 각별한 즐거움으로 잠시 포장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엄마'라는 말을 하기 시작하고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질 무렵, 집에 트리를 들여놓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트리를 준비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크리스마스가 끝난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때가 오고, 우리를 설레게 했던 트리가 그때는 보관해야 할 짐이 되어 어딘가에 묻혀있는 것이 싫었다. 한 달 반짝 우리를 즐겁게 해준 트리는 나머지 열한 달은 수고롭고 귀찮은 물건이 된다. 미니멀을 지향하려고 마음을 먹는 중이기에 또 다른 물건을 집에 쌓고 싶지 않았다. 잠시 분위기를 내기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예쁜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연말의 분위기를 내되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는 것을 구하는 것으로 스스로와 타협했다. 인터넷에는 마음을 끄는 여러 종류의 트리가 있었다. 그중에서 벽 트리를 고른 것은 자리를 가장 적게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대여섯 개의 자작나무 가지를 끈으로 연결해서 납작한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구슬과 장식품 그리고 전구를 붙일 수 있는 트리였다. 몇 해 동안은 벽트리로 기분을 냈다.


  문제가 생겼다. 트리 나무와 실에서 가루들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벽에 붙일 때 가루가 떨어지는 게 바닥에 보였다. 여기저기 가루가 묻어 옮겨 다녔다. 지저분해지는 것이 싫었다. 올해는 트리를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해마다 트리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캐럴을 꼭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케이크를 준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마케팅이고 상술이니 이번에는 그런 것에 휩쓸리지 않으리라 마음먹기로 했다. 아마 결혼만 안 했어도, 아니 아이들이 원하지만 않았어도 상술 따위에 넘어가지 않았을 거다.


  트리 언제 해요?

  얼른 트리 꾸미고 싶다.

  아이들이 일 년 중 생일과 어린이날 다음으로 가장 기다리는 때가 크리스마스인 걸 깜박했다. 기대 어린 천진한 눈빛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나름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집은 이미 미니멀하지 못했다. 여러 전집에 크고 작은 장난감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북한 만들기 작품까지. 작은 트리 하나 추가한다고 크게 문제될 것 같지 않다. 저렴한 걸로 하나 사지 뭐. 그렇게 크지 않은 걸로. 아이들이 웃을 수 있고 즐거울 수 있으면 상술에 기쁜 마음으로 넘어가주는 거다.


트리 만들기 재료

  너무 크지도 않고 적당한 크기의, 어른 팔 길이만 한 트리를 골랐다. 마치 초록 나뭇잎에 눈이 온 것 같은 느낌의 긴 장식물과 빨간색, 초록색, 금색의 매끄럽고 반짝이는 구슬을 골랐다. 아이 손바닥만 한 종 두 개가 달린 붉은 리본도 샀다.

  아이들에게 함께 트리를 만들자고 했더니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끈을 두르고 구슬을 붙이고 리본과 종을 트리 맨 위에 달았다. 전에 쓰던 꼬마전구를 휙휙 감아 스위치를 켜니 제법 근사하다.




  엄마가 되니 하고 싶은 것에 자꾸 제약이 생겼다. 잔잔한 영화 보기,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가기, 클래식 공연 감상하기, 하루종일 실컷 드라마 보기, 인스턴트 음식 자주 먹기 같은 것을 마음 편히 할 수 없다. 햄버거가 먹고 싶은데 지난 주에도 아이들과 먹은 걸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킬 때는 그저 아쉽기만 했다. 아이들이 어서 커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였으면 트리 만들기는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울이 꿍이 성화에 트리를 만들고 나니 집이 더 반짝반짝거렸다.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지만 덕분에 새롭고 익숙지 않은 일들로 즐거움을 얻게 된다. 있는 줄도 몰랐던 작고 고운 열매를 따다 소꿉놀이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 겨울에 아이를 태우고 눈썰매를 타며 얼굴로 잔뜩 튀는 눈을 맞아보는 일, 유치할 줄만 알았던 어린이 뮤지컬을 보고 내가 더 펑펑 울던 일, 나뭇가지에 얼기설기 거미줄을 만든 것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일. 생각해 보니 꽤 많았다. 앞으로도 더 늘어가겠지. 그렇게 아이들 덕분에 못 보던 것을 보고 더 유쾌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 덕분에 해보지 못한 것들을 시도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나를 바라봐주고 엄마를 꼭 안아주는 지금 이 순간을 잘 잡아야겠다.


  울이 꿍이 덕분에 엄마의 세상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완성한 트리




덧. 언젠가 울이와 꿍이가 크면 엄마가 쓴 글을 읽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까칠이와 순둥이라는 이름 대신 애칭으로 불러보려고 합니다. 울이가 자기를 까칠이라고 불렀다는 걸 알게 되면 진짜 많이 까칠해질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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