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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Feb 13. 2024

오늘 밤 폭식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박상영)』

  다이어트에 대한 에세이일까. 우아하고 멋진 제목의 책들 사이에서 소박하고 흔한 문장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책이 궁금해졌다. 누구나 한 번쯤 밤에 되뇌어봤을 법한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라는 평범한 말과 눈에 띄는 주황색 표지에 저절로 손이 갔다.



  작가는 회사 후배에게 살만 빼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직설적으로 듣기도 하고, 다이어트 차를 직장 동료에게 받기도 하는 사람이다. 매일 밤 굶어보겠다고 다짐하지만 기분이 좋다는 이유로 혹은 나쁘다는 이유로 혹은 전혀 엉뚱한 핑계로 번번이 결심이 어그러지는 사람이다. 매번 야식을 끊어보겠다고 다짐하고 실패하고 후회하고 다시 결심하는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그의 하루들을 읽어나가며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고 연민을 느꼈고 작가에게 점점 마음이 갔다. 그의 모습은 나였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하루를 알차게 시작해 보겠다고 매일 밤 다짐을 하고 다음 날 새벽이면 알람을 끄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카페인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참에 커피를 끊기로 해놓고 오후가 되면 얼음 가득한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넘겨야 기운이 났다. 어디까지 늘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뱃살을 보며 이제부터 저녁에 맥주캔을 따지 않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저녁밥을 다 먹고 나면 헛헛한 마음으로 냉장고 문을 열어 맥주 캔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에 1만 보씩 걸어보겠다고 다짐하고 정확한 걸음수를 재기 위해 스마트워치까지 구입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손목에 차는 것마저 귀찮아졌다. 계획을 지키는 것은 편하게 쉬고 싶은 나 자신과 싸워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결심이 어그러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못 이기는 척 넘어가는 건 금방이다.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 분명하다. 


  계획이 한번 두번 실패하다 보면 이럴 줄 알았어, 내가 그렇지 뭐 생각하게 된다. 차곡차곡 나에 대한 실망감이 쌓이다 보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나마 작심하루라도 지켰던 것들을 놓아버리고 싶게 된다.




  주어진 하루를 그저 주어진 하루만큼 온전히 살아낸다는 것

  '내 삶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내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의 연속'*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가혹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대신 주어진 하루를 온전히 살아냈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렇게 해낸 나 자신에게 박수 치고 응원해 주라는 말에 뭉클해졌다. 위로받는 것 같았다.

  새벽기상을 못했다고 해서 하루가 망가지는 것은 아니다. 커피를 마셨다고 해서, 저녁마다 맥주를 마셨다고 해서, 1만 보씩 걷지 못했다고 해서 내 하루들이 부서지는 것은 아니다. 부족하지만 노력하고 있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 보고 싶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나에게 늦었다고 다그치는 대신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안아주는 것부터 해보고 싶다. 



덧. 목표와 실천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진짜 바라는 삶에 대한 이야기, 회사를 다니는 작가의 모습, 달려야 하고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신기하게도 모든 이야기들이 오늘 밤 굶어야 한다는 것과 연결되면서 끝이 난다. 삶에 대해서 가볍지만 진중하게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웃음이 나면서도 진지해지고 쉬운 듯하면서도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유쾌하면서도 담백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부러움이 생긴다.)


이미지 : freepik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박상영)"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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