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브링리,『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가족의 죽음만큼 아프고 애닯고 고통스러운 것이 있을까. 꽤 유망 있는 직장에서 일하던 작가는 형의 죽음 이후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간다. 그는 거대한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어 고요와 침묵 속에서 시간이 흘러가도록 둔다. 그는 '어디로도 가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는다(139쪽)'고 했다. 어떤 것에 얽매이고 열심히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일. 그는 그렇게 경비원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10년 후 작품과 사람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받고 미술관에서 나와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형을 잃은 커다란 상실감을 일상과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으로 채우며 형에 대한 격렬한 애도의 끝을 마무리한다.
작가는 경비원이 되기 전 잡지사에서 일하는 바쁜 사람이었다. 중요한 일을 뛰어난 사람들과 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도 언젠가는 중요하고 존재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바쁜 일상으로 그는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하지 못했고, 영감을 주는 주제에 도전해 글을 쓰지 못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을 하며 점점 자신을 잊어가고 있었다.
작가의 예전 모습에서 나를 돌아보았다. 맡은 일을 해내려고 아등바등 바쁘게 지내지만 그 속에 내 생각과 의견이 얼마나 있었을까. 남과 비교하면서 부족한 점을 메우려고 애썼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느라 괴롭고 힘들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의견을 말하고 영감을 주는 일에 대해 글을 쓰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미처 알지 못했다.
원하는 글을 읽고 부족하나마 내 생각을 좇아가며 글을 쓰는 이 순간이 그래서 너무나 소중하고 귀하다. 아마 바쁘고 정신없는 때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때에도 '나'의 생각과 의견을 살펴보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쓰는 것을 잊지 않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먼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고 싶어졌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게 된다면 작가가 말하는 작품들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그가 느꼈던 것과 내가 느꼈던 것을 비교해보고 싶다.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떤가요, 물어보고 싶다. 작가는 미술관에 없지만 자유롭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경직되고 엄격해 보였던 경비원에게 작품에 대해 살짝 물어보고 의견을 구해보고 싶기도 하다.
아주 크고 넓은 미술관에 가서 길을 잃어보고 싶어졌다. '아름다움을 모아둔 저장고 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작고 하찮은 먼지 조각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즐기십시오(527쪽).'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곳에서 작고 작은 먼지가 되더라도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작품을 지켜보고 싶다. 해설을 듣지 않고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 서서 지그시 한참 동안 발이 저려올 때까지 서서 바라보고 싶다. 작품이 어떤 말을 건네올 때까지. (아이들과 미술관에 갈 때가 많아 그러기가 쉽지 않다. 혼자서 미술관에 가서 꼭 해봐야겠다. '혼자서 미술관'이라니 얼마나 호사스럽고 사치스러운 여유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붕붕 뜨기 시작한다.)
작가가 긴 애도를 끝내고 자신의 삶을 새롭게 계획하고 설레어하고 신나하는 모습을 본다. 말할 수 없이 커다란 슬픔을 위로받고 담담히 이겨낸 그를 축하해주고 싶다. 그와 가족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떠올라 미소지어진다.
삶은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하단 인용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531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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