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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날 현 May 15. 2020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나보다 늘 한 걸음 앞에서 인생을 걸어 나가는 친구가 있다.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일 년에 겨우 한 번 정겹게 만나서 우리는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그간의 소식을 전해주는 내 친구에게서 작년에 비해 깊어진 눈을 발견한다. 


     차분해진 눈매만큼이나 더 온화해진 미소를 지으며 전해주는 그녀의 일상 속에서 나는 내일을 본다. 내가 꿈꾸는 내일을 그녀는 오늘로 살고 있다.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만의 삶을 힘껏 살아내고 있는 친구가 부러움과 동시에 존경스러워서 내 눈이 반짝이고 만다. 


     이번엔 내 차례. 분명 나에게도 똑같은 일 년이 흘렀을 텐데 지나간 일 년의 시간만큼 깊어진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와 달리, 나는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고 여전히 철부지 같기만 하다. 평온하고 성숙해 보이는 그녀의 오늘과는 결이 다른, 나의 들뜨고 불안했던 어제와 오늘을 와르르 쏟아내고야 만다. 


     그 친구에게는 이미 한 차례 앓고 지나갔을 나의 어리광 섞인 고민들. 그녀는 채 정리되지도 않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다가 한 마디씩 조언을 던져준다. 나에게는 그게 마치 정답지 같다. 문제집의 맨 뒷장에 붙어 있는 [정답 & 해설]을 잃어버려서 나의 오늘을 채점하지 못한 채 내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불안해하고 있었다는 걸 미리 알았던 것처럼, 친구는 나의 오늘과 꼭 닮은 본인의 어제를 들려주며 나를 안심시킨다. 


     그리고 어제를 겪었기에 빛나는 그녀의 오늘을 있는 그대로 펼쳐서 보여준다. 그 안에는 기쁨도 있지만 후회도 있다. 내가 어떤 선택지를 골라야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할 수 있을지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거다. 돌아서서 곱씹어보며 마음 상하게 될만한 섣부른 판단도 어설픈 충고도 없이, 나를 돌아볼 여유와 지혜만을 친절하게 건네준다. 


     앞으로 한 걸음 더 내딛기엔 겁이 나고 그렇다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서기엔 아쉬워서 쩔쩔매며, 그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망설이기만 하는 나에게 이제 그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이쪽으로 폴짝 뛰어와도 좋다고, 내 앞에 서서 환하게 웃으며 상냥하게 손짓하는 거다. 


     나보다 한 뼘 더 성숙해 보이는 그녀를 한없이 믿고 따라가고 싶어 진다. 똑 닮은 길은 아닐지라도, 내년 이맘쯤에 우리가 다시 반갑게 만나서 나의 오늘이 여전히 그녀의 어제와 닮아 있고, 나의 내일이 감사하게도 그녀의 오늘과 닮아 있음을 확인받고 안심하면서 그렇게 또 한 걸음을 폴짝 뛰어보고 싶다.


     이곳에서 적어나가는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어제였고, 오늘이며, 내일로 비추어져 그에게 한 걸음 더 내디딜 힘이 된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넘치도록 충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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