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소녀들에게.

by 나타날 현


학생들을 가르치는 업에 종사한 지 이래저래 어언 10년쯤 되었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니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 상당한 변화가 있음을 느낀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었던 20대에는 학생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교사로서의 내 모습과 내 수업만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학생들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는 데 온 에너지를 다 쏟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른으로 보이고는 싶은데 어른은 못되고, 그게 들통날까 봐 전전긍긍했던 것도 같다.


그러다 보니 선생으로서 마땅히 고려했어야 할 부분을 많이 놓치고 지냈다.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학생들 개개인에 대한 관심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간혹 내 수업을 잘 따라와 주고 자주 눈이 마주치는 학생들의 이름을 조금 더 기억하는 정도였다. 3년간의 교사 생활에서 내가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자꾸만 얼굴이 화끈거려서 그 질문에 대해 오래 고민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내가 겨우 찾아낸 답은, 나 스스로도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그랬다는 것이다. 뒤늦은 변명이지만 내 인생도 물음표 투성이었는데 내 앞에 앉아 있는 어린 학생들이 보였을 리 만무했다고.

치열했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보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조금씩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에 들어온다는 건, 물리적으로 아이들의 눈을 더 오래 쳐다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눈을 맞추는 척'하지 않고 아이들을 한 명씩 '진짜로' 본다는 것. 그렇게 아이들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개중에 나와 주파수가 맞는 아이들이 보인다.

얼씨구? 너 내 수업 좀 좋아하겠는걸? 싶은 아이들.

물론, 그런 경험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학창 시절에 내 마음에 맞는 선생님을 만나기 어려웠듯, 강사로서도 내 마음에 맞는 학생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내 질문에 대충 고개 끄덕이고 기계적인 대답을 하다가 강의실을 나가는 학생들이 대다수인데, 아주 가끔, 그러니까 1년에 예닐곱명 정도 나와 맞는 학생이 생긴다.

그들의 특징은 우선 첫 만남에서부터 드러난다. 강단에 서 있는 나를 무척이나 눈여겨본다는 것이다. 그런 시선을 느끼고 나면 이상하리만큼 수업이 잘 풀린다.


네가 내 수업에 반하지 않고 배기랴.


그런 마음으로 나는 기세등등하게 수업을 끝낸다. 그리고 나면 그들은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 강의실을 나서고 그다음 수업부터 내가 하는 모든 설명, 농담까지 놓치지 않는다. 내가 딱 하라는 대로 고대로 따라 하기까지 한다. 빨강 파랑 색깔을 바꿔가며 필기하는 디테일부터 끊어 읽는 부분, 문제 푸는 순서, 유형별 풀이 방법까지 전부 다 쏙쏙 흡수한다. 그렇게 한 달 여간 지속되다 보면 문법이 쉬워지고 독해가 수월해지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갑자기 내 수업에 대한 미친 나르시시즘 같은데 정말로 그렇다. 수능 영어를 이렇게 푸는 건 줄 이전엔 몰랐다는 피드백을 전해오면서 나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업 중에 나누게 되는 개인적인 이야기 속에서 인간적인 유대를 갖게 되는... 그런 순서랄까.

딱 여기까지.

겉으로 친해지고, 점수 오르고, 서로 뿌듯해하고, 타이밍 맞게 헤어지는 수순. 보통은 그렇게 끝나기 마련인데, 그 이후로까지 관계가 이어지는 소녀들이 생겼다.

이 소녀들의 특징은 여타 학생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눈빛이 통한달까. 인간적으로 나도 너를 보고 있고, 너도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깊은 눈빛 속에서 나는 열여덟의 나를 투영하고 만다. 그 시절의 나를 응원하듯, 앞으로 네게 펼쳐질 인생을 나는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겠노라고 귀띔해 주고 싶어서 막 안달이 나고, 마구 열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어쩔 줄을 모른다.

가끔은 그 마음이 과해지기도 한다. 지나칠 정도로 내 어린 시절을 노출하며 내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하려고 꼰대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차 싶어서 이미 쏟아놓은 얘기를 몇 조각이라도 주워 담아보려 하면 그조차도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 이렇게 속 깊은 소녀들을 내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나에게서 더 배울 것이 있을까 싶을 때, '선생님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같은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러면 가슴이 벅차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이렇게 부족한 내가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란 게 있을까. 겸손해진다. 그런 날이면,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각오로 잠에 들곤 한다.

오래 보고 싶지만 강사와 학생으로 만난 관계이다 보니 그 끝은 정해져 있고, 헤어짐이 당연한 시간이 오고야 만다. 작년에 한 아이는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고, 올해 고3인 다른 아이는 내가 퇴원을 제안하면서 끝이 났다. 4등급이었던 모고 점수를 1등급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나머지는 네 몫이라며 하산시켰다.

하지만 그녀들은 제자라기보다는 '인연'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는 관계로 남았다(고 믿는다). 앞으로 살아가다가 그 언제든 나에게 SOS 치는 날이 온다면 나는 기꺼이 너를 위해 만사 제치고 고민해 주겠노라, 내 스스로 약속하게 되는 관계.


이번 기말고사를 끝으로 고3인 아이와 안녕을 고하면서 서로 카드를 주고받았다. 내쪽에선 격려의 카드를, 그 아이 쪽에선 아쉬움이 담긴 편지였다. 두 장 빼곡히 쓰여진 편지 속 한 구절이 자꾸만 마음속에 메아리친다.

'선생님 덕분에 하늘색 동그라미뿐인 제 우물에 나비도 찾아오고 구름도 지나가요.'

아아. 선생 하길 참 잘했다 싶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마음으로 당분간 즐겁게 선생질하련다.

내가 사랑한 소녀들이여,
부디 마음껏 경험하고
실컷 사랑하고
욕심껏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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