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책이 나왔다. 출간 전 계약 조건에 따라 1쇄 이후에는 주문 후 인쇄 방식으로 제작되기에 출간 후 내 손에 들려진 건 한 권뿐. 인쇄소에서 책이 도착했다는 에디터의 연락을 받고 콩닥콩닥 뛰는 가슴으로 달려가 처음으로 내 이름이 새겨진 책을 안았다. 예뻤다. 마음을 담아 열 권을 구매했다. 맨 앞 장을 펼쳐 나다운 조그만 글씨를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편지를 적었다. 직접 그린 그림엽서 한 장을 앞에 덧붙이고 포근포근 색동 털실로 리본을 묶어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했다.
열 권은 생각보다 금방 동이 나서 다섯 권을 추가로 구매했다. 그 사이 응원의 마음을 담아 시부모님께서는 열 권을 주문해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셨고, SNS로 출간 소식을 접한 친구들이 책을 구매했다며 인증샷을 보내오기도 했다.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포털 사이트에 나의 책을 검색하면 조그맣고 빨간 동그라미에 ‘베스트셀러’라고 쓰인 딱지가 붙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가, 나의 마음들이 둥실둥실 떠가는 것 같아 조금은 부끄럽고 겸연쩍은,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설레고 뿌듯한 날들이었다.
내가 정성스레 실어 보낸 열다섯 개의 마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네가 울 때 나도 함께 울었다며 다정한 응원과 따스한 위로를 담아 돌아왔다. 둘 중 하나만. 절반 정도는 아마도 그들의 책상 혹은 책장에 예쁜 색의 인테리어 소품 정도로 꽂혀 있겠지. 어쩌면 내 생각보다 작품이 형편없어서 덧붙일 말이 없었을지도, 어쩌면 나의 숨겨왔던 지난날의 아픔에 함부로 말을 보탤 수 없어서 차마 아무런 말을 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언젠가’ 여유가 생겼을 때 읽어보려고 ‘잘’ 간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수많은 이유와 변명들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나, 사람들은, 아니 우리는, 요즘 글을 읽지 않는다.
글을 읽기가 힘든 사회. 혹자는 너무 바빠서, 혹자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렇다 변명하지만, 우리는 ‘읽기’보다는 ‘보기’에 급급하다. 정사각형 틀 안에 갇힌 이미자와 그 아래 몇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채 문장이 되지 못한 말들. 굳이 하나하나 클릭해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내용을 알 수 없는 자극적인 표현들로만 버무려진 헤드라인을 습관처럼 의미 없이 훑어보며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단어와 문장과 문단을 통해 흘러가는 사유와 감정을 따라 찬찬히 공을 들여 함께 생각하고 느끼는, 꼭꼭 씹어 읽고 삼키고 소화해 내는 ‘읽기’를 진정 경험해본 지가 언제인지, 아득하기만 하다. 뭐, 나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읽는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공력이 든다. 활자가 되지 못하고 공백 속에, 혹은 활자 뒤에 숨은 작가의 마음을 찾아내는 건 물론이고, 그저 순서대로 차근차근 흐름을 따라 읽고 이해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즉각적으로 자극을 받아 마음을 동요하는 이미지들에 비해 두뇌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만큼, 우리 몸과 마음은 읽는 것에 쉬이 지치고 피곤해한다. 결국, 우리는 읽지 않는다. 늘 보고 있지만 읽지 않는다. 특히 화면 밖으로 튀어나와 종이에 박힌 어떤 것이라면 더더욱.
막연히 알고 있다 생각하던 것이 현실 세계의 나의 일로 닥쳐왔을 때의 당혹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래서 악플보다 못한 게 무플이라던가. 하다못해 리본 하나를 묶더라도 더 예쁜 매듭이 지어질 때까지 서너 번은 풀었다 다시 묶던 정성인데, 한 사람 한 사람 받게 될 ‘당신’을 생각하며 정성스레 써 내려간 마음인데,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우체국에 달려가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 택배를 보내던 노력인데, 택배를 잘 배달했다는 이야기는 우체국에서만 들려올 뿐. 아무런 반응도 대답도 돌아오지 않은 채 쓸쓸히 홀로 거두어들여야 하는 마음들이, 어쩐지 시리고 쓸쓸하다.
20년 간 누구에게도 말하거나 내색하지 않았던 아픔을 끄집어 내 단정한 단어와 단단한 문장들로 정리하는 동안, 지난 시간 참아왔던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쏟아내지 않고서는 다른 어떤 이야기도 솔직하게 써 내려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시작한 프로젝트.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할 때 더욱 큰 용기가 필요했던 ‘나’의 이야기... 한 친구의 옆구리를 쿡 찔러보니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는 고백이, 다음날이 되어서야 네 글을 읽었다며 짧은 감상과 위로의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글에, 혹은 글에 담긴 지난날의 나에게 진심으로 공감하며 돌아온 마음들이 대부분 같은 결을 하고 있으니,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마음들의 속내는 한 가지, 사실은 읽지 않았다는 거다. “뭐 아무렴 어떤가!”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내 마음이 영 옹졸하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글이 아니라, 나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생각한 사람들에게 전한 마음이었기에.
"무릇 작가란 글 쓰는 즐거움과 생각의 짐을 벗어버리는 데서 보람을 찾아야 할 뿐, 다른 것에는 무관심하여야 하며, 칭찬이나 비난, 성공이나 실패에는 아랑곳하지 말아야 한다."
-윌리암 서머셋 모옴 <달과 6펜스> 중-
그래서 난, 얼굴도 모른 채 나의 글로만 나를 보아주고 다정한 댓글을 남겨주고 수줍은 하트 버튼을 꾹 눌러주는 브런치의 독자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이 참 고맙다. 나의 글을 기다리고 응원해주는 구독자가 한 명 한 명 늘어나는 게 신기하고 감사하다. 조금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발행하면 쉬이 포털 메인 페이지에 등장해 하루에도 몇 만 명이 내 글을 읽었다는 통계에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쓰기로 작정하고 시작한 삶. 누가 읽든 읽지 않든 이왕이면 좋은 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따뜻한 울림을, 다정한 위로를 더해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물론 이 글도 그다지 읽히지 않겠지만, 여기까지 스크롤을 찬찬히 내리며 읽어 준 그대에게, 온 마음으로 감사. 따뜻하고 포근한 고마움을 담아 꼭 안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