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애잔하고 애틋한 그녀, 나의 외할머니
스무 살 여름, 대학 한 학기 등록금과 맞먹을 만한 금액의 최신형 캠코더를 샀다. 꽤 부담이 되는 금액인데도 흔쾌히 사 주시던 엄마가 부탁처럼 내 건 조건은 단 하나. “우리 엄마 모습 좀 많이 찍어줘.”
우리 엄마가 막내이다 보니, 외할머니는 내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등이 살짝 굽은 ‘할머니’ 셨다. 꼭 연세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다. 세 살배기 막내, 그 위로도 셋이나 더 있던 자식들을 오롯이 부인 손에만 맡겨두고 일찌감치 눈을 감으신 그녀의 남편, 갓 스물 무렵에 사고로 죽어버린 하나뿐이던 아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막내딸의 남편이 40대 젊은 나이에 돌연히 심장마비로 떠나는 것까지 다 지켜보셔야만 했던, 그 모든 순간을 살아내셔야만 했던, 가느다란 뼈 위에 얄포름한 거죽 하나 얹어 놓은 듯 마르고 마르셨던 작은 여인. 그 굴곡진 삶을 하나도 알지 못했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 늘 애잔하고 애틋하게 느껴졌던 나의 외할머니.
드라마나 역사책에나 나올 법한 일제시대를 오롯이 겪은 할머니는 가끔씩 일본어로 노래를 불러 주셨다. 소학교 때 배우셨다며 ‘이찌, 니, 산, 시’ 숫자 세는 것도 보여주시고. 다 지난 일이라 기억도 안 난다 하시면서도 그 작은 몸 안에 그 많은 세월을 오롯이 담고 계셨다. 마땅히 풀어낼 길 없는 그 세월 탓일까, 할머니는 평생을 부끄러워하시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셨다. 몸을 최대한 움츠린 채 담뱃불을 붙이시고 간신히 쏟아 내시던 가냘픈 흰 연기는 사실 참아왔던 한숨이었겠지. 담배 냄새라면 질색팔색 하던 나지만, 할머니가 피우시는 담배는 어쩐지 싫지 않았다. 할머니의 굽은 등 듬성듬성해진 짧은 파마머리 위로 피어오르던 연기는 마치 노을질 무렵 시골집 부뚜막에서 올라오는 연기 같았달까. 할머니는 냄새나고 연기 나니 저리 가라고 손사래를 치시면서도, 자꾸만 자꾸만 옆으로 무릎을 당겨 앉고 두 눈을 깜빡거리던 어린 나를 바라보며 웃으셨다. 온 얼굴의 주름으로.
새 캠코더를 만지작거리며 혼자 생각했다. 담고 싶었던 할머니의 모습, 장면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이층 집까지 오르는 계단 층층마다 가지런히 놓여있던 선인장 화분들, 거실 너른 창가에 매달려 있던, 당신의 막내 사위가 해외 출장길에 사다 드린 커다란 새장 모양의 자개 모빌, 여든이 다 될 때까지도 교회에 가실 때면 곱게 화장을 하시던 할머니의 화장대, 반짝이는 귀걸이와 진주 목걸이, 악보도 없이 큰 글씨만 쓰여 있던 찬송가와 낡은 성경책, 모든 페이지가 너덜너덜해질 만큼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시던, 전화번호와 소소한 일상들이 담겨 있던 할머니의 수첩, 잔잔한 꽃무늬가 가득했던 할머니의 옷장, 늘 머리와 허리가 아파 끼니때마다 반으로 쪼개 삼키시던 게보린, 안방 한 구석에 감추어 있던 재떨이, 그리고 딱히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하루 종일 누군가를 기다리듯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던 할머니의 쓸쓸한 눈빛, 그 위로 물들어가던 붉은 노을......
하지만 스무 살의 나에게, 할머니는 정지화면 같았다. 그냥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영원히 계실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는 늘 찍고 싶은 구도와 장면과 내용들이 있었는데,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하루하루 뒷전으로 슬그머니 미루어 두었다. 그 사이 할머니가 사시던 동네는 재개발이 되어 높다란 아파트들이 들어섰고, 늘 여기저기 아프시던 할머니는 병원에 들어가셨다. ‘간단한 입원 치료 정도겠지...’하며 무덤덤했던 나는, 할머니가 병원에 계신 모습이라도 찍어 달라는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픈 모습 담아봐야 가슴만 아프지, 겨울 지나고 새 봄이 오면 할머니랑 세 딸들, 벚꽃잎 떨어지는 꽃밭에서 예쁜 사진 멋진 영상 많이 많이 담아드리겠다며 큰소리쳤는데, 할머니는 봄은커녕 해를 넘기지도 못하고, 크리스마스이브에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난 엄마에게 평생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야 말았다.
어린 시절 보았던 할머니만큼 나이가 들어버린 할머니의 딸들과, 그 시절의 나만한 나의 딸과 함께 짧은 나들이를 다녀왔다. 집에서 머지않은 곳에서 작은 요트를 띄우고, 노을과 바람과 일렁이는 물결을 마주했다. 마치 신혼여행 온 것 같다며 아이처럼 설레하는 엄마와 이모를, 두 할머니의 품에서 마냥 신이 난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나의 아이를, 한 순간이라도 놓칠까 아쉬워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카메라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아찔한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자 <코코>에서 보았던 메리골드로 뒤덮인 다리가 강 위로 드리워졌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잇는 다리, 죽은 자들이 가족의 곁으로 가는 길을 밝혀주는 빛이자, 살아있는 가족들이 여전히 사랑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걸 상징하던 메리골드. 문득 외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우리 할머니도 저 주홍빛 꽃길을 사뿐사뿐 건너셨겠지.
1923년생 최옥주 씨.
나비 날개 같은 새하얀 블라우스에 분홍빛 꽃무늬 공단 치마 입고 알록달록 화려한 나라에서 재미난 구경 많이 하면서 지내고 계시죠? 매일 아프던 머리 허리 무릎 쭉쭉 펴고, 소학교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달리기도 하고 고무줄놀이도 하시면서요.
젊어 떠난 남편 손도 잡으셨나요, 장성한 아들도 만나셨고요? 창창했던 사위, 우리 아빠도 만나서 ‘자네가 왜 여기 먼저 와있는가!’ 하시며 투닥투닥 등도 때려 주셨죠?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우리는 늘 당신을 기억하고 있어요. 좋은 풍광을 볼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대할 때마다, ‘지금 살아 계셨다면 더 잘했을 텐데, 다 해드렸을 텐데...’ 하면서요.
마지막까지 애처롭게 바라보시다 눈을 감으셨던 당신의 막내딸은, 이제 며칠만 염색을 거르면 흰머리가 성성한 할머니가 되었어요. 늘 듬직하게 믿고 의지하셨던 둘째 딸은 곧 칠순이 된답니다. 할머니의 딸들은 다 자란 제가 이렇게 가끔씩 재미난 구경도 시켜드리며 잘 모시고 있어요.
작은 배를 타고 강에 나갔던 잠시 동안, 모든 순간을 담기라도 하려는 듯 얼마나 사진을 많이 찍었나 몰라요. 그때도 이렇게 좀 찍었어야 했는데, 함께 얼굴 부비고 살아가는 날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땐 왜 알지 못했을까요.
오늘 우리가 보았던 메리골드 닮은 주홍빛 노을, 그림자처럼 드리워 있던 다리 저 너머에 그리운 당신들의 세계가 있었을까요? 오늘은 참 많이 보고 싶어요, 할머니, 나의 마마코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