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인연에 집착하지 않도록
“우리는 친구가 별로 없으니까 늙어갈수록 서로에게 잘해야 돼. 안 그럼 말년이 엄청 쓸쓸하고 심심하고 외로울 거야.”
늦은 밤, 조그마한 크리스털 잔에 위스키를 따르며 남편이 말했다. 그렇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친구가 별로 없는 편이다. 특별히 성격이 모나거나 별나서는 아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이미 지나간 시간, 흘러가버린 인연에 대해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순간마다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함께라면 세상 무엇도 두렵지 않을 것만 같았던,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와도 같았던 친구들. 첫사랑의 편지를 돌려보며 네 사랑이 내 사랑인 양 설레 하던 여고 시절 친구들, 전국에서 공부깨나 한다는 애들이 모였지만 너무도 촌스럽고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웠던 대학 동기들, 한 손에 잡히지도 않을 만큼 두툼한 원서들을 뒤적이며 문학과 철학과 예술을 꽤나 진지하게 논하던 젊은 영문학도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첫 명함을 함께 건네받던 입사 동기들.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등을 다독여주던, 그 시기의 기쁨과 슬픔과 설렘과 걱정과 막막함을 함께 나누고 지내왔던 수많은 소중한 인연들.
꿈 많은 여고생이 화사하게 빛나는 대학생이 되고, 풋풋한 사회 초년병이 되고, 씩씩한 직장인이, 새초롬한 새댁이, 푸근한 엄마가 되는 동안,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많은 인연들이 멀어지고 흩어지고 잊혀졌다. 오래도록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사랑과 격려를 더해주는 관계로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과 욕심에, 반짝이는 추억을 잃기 싫은 아쉬움에, 때때로 그 끈을 놓지 않으려, 혹은 다시 잡으려 허우적대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가 아니듯, 그들도, 우리도 그러했다. 기억과 추억에 기대어 애써 마주한들, 잠시의 반가운 순간이 지나면 생활 반경이 달라지고 삶의 모습과 형편 또한 제각각으로 변해버린 우리의 사이에 쉬이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생겼다는 걸 확인하게 될 뿐이었다.
그 씁쓸한 순간을 몇 번 맛본 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흘려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 여기’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과 따뜻하고 다정하게 마음을 나누는 것에 최선을 다하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발을 디디고 있는 세계가 달라짐에 따라, 혹은 또 다른 어떠한 이유로 흘러가고 멀어져 간 인연들에 대해 지나치게 아쉬워하거나 붙잡으려 안달하지 않겠다는 마음. 그 시절의 끈끈하고 든든하고 따뜻했던 기억들은 내 안에 그저 소중하게 담아두고, 오늘의 나와 관계하고 있는 인연들에게 충실하자는 다짐. 시간이든 사람이든 우정이든 추억이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들을 담담하게 바라보기 시작하자 나는 한층 가볍고 자유로워졌다. 소란하고 시끌벅적한 모임들은 사라졌지만, 그 모든 간극을 뛰어넘을 만큼 서로의 존재를 본질처럼 꿰뚫고 나눌 수 있는, 조용하고 깊은 친구 몇이 곁에 남았다. 그리고 지금 실재하는, 혹은 오늘 새롭게 다가오는 인연들에게 흔쾌히 곁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여유 또한 생겼다.
부부가 되기 전 서로를 알아가던 시절,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주목의 대상이자 호감의 상대인 우리 둘에게 이런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을 때, 어쩌면 나는 그때 알았던 것 같다. 이 남자와 아주 오래, 어쩌면 평생의 인연이, 귀한 친구가 될 수 있겠다고. 그때의 예상이 크게 빗나가지는 않은 것 같다. 10년째 함께 하고 있는 우리는 365일 중 350일 정도는 마주 앉아 저녁을 먹고, 밤이 깊도록 수다를 떨고, 손깍지를 끼고 동네를 기웃거리며 산책을 한다. 지나간 것들에 연연하지 않기에 오늘 이 순간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고,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며 함께할 수 있다. 우리의 이러한 오늘 또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허나 지나간 시간만큼이나 아직 오지 않은 내일 또한 붙잡을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법.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진실한 오늘이 같은 결의 내일로 이어지기를, 그렇게 흘러가기를 바라며, 우리는 오늘도 가장 가깝고 든든하고 다정한 친구로서 이 순간들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