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제나봄 Jan 06. 2021

악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통 속에 스러져간 여린 생명을 추모하며


며칠째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는 얼굴이 있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만큼 반달눈을 찡긋 감아가며 해맑게 웃고 있는 보송보송한 아가의 뽀얀 얼굴. 차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tv를 보지도 못한 주제에 결국은 맞닥뜨리게 된 그 아가의 얼굴. 불과 그 몇 달 사이에 처참하게 내려앉은 아이의 얼굴 근육들이, 살려주세요 구해주세요 말 한마디 할 수 없이 영겁의 어둠 속으로 내던져진 채 모든 걸 체념한 듯 기대앉은 구부정한 모습이, 이리저리 겹쳐지고 아른거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한없이 슬프다. 파르르 분노하고 단죄하라 처벌하라 목소리를 내지도 못할 만큼 깊은 패배감과 절망감에 빠져든다. 길가에 떠돌아다니는 고양이들에게도 매일 아침 밥그릇 물그릇을 씻어 놓아주는 사람들이 모래알처럼 잔잔하게 이 땅에 숨결을 불어넣을 때, 잊을 만하면, 아니 잊을 새조차 없이 들려오는 이런 소식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늪처럼 이 땅의 생기를 빼앗아간다. 잔잔한 마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열한 눈빛으로 아주 소름 끼치게 웃으며 말한다. 그래 봐야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너의 근처에 항상 있을 거라고.


악은 그렇게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직 채 피어나지도 못한 생명을 고통스런 죽음으로 몰고 가는 동안, ‘나는 생면부지의 아이를 이렇게 가슴으로 낳아 키우고 있다’며 방송에 얼굴을 들이밀고, ‘우리는 구원받은 백성’이라며 스스로를 한없이 선하고 의롭게 치장하고 있었다. 특별히 악해 보일 것도 없는 그 평범하고 일상적인 얼굴이, 카메라 앞에서 아이 볼에 얼굴을 부비며 웃던, 이제 와서야 보이는 그 가증스러운 모습이, 나는 이제 두렵기까지 하다. 세상을 경악케 했던 조두순은 어떠한가. 출소할 때 보인 그의 모습은, 그저 우리가 동네 어귀를 한 바퀴 돌면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그 연배의 흔하디 흔한 할배의 모습이 아니던가.  


침울하다. 정말 신이 살아 계시기는 한 건지 하늘에 대고 묻고 싶다. 목사의 자녀로 태어나 기독교 교육을 표방하는 곳에서 교육을 받고, 그분의 말씀을 전한다는 회사에서 선하디 선한 그 얼굴로 살아왔을 그들을 지켜보셨는지. 이 모든 상황을 알고서도 고작 자신이 태어난 날을 기념한답시고 모여 와인 잔을 부딪힌 그들의 부모가 거룩한 표정으로 강단 위에 서있을 때, 당신도 정말 그 예배 중에 거하셨는지. 여러 차례 알리고 신고했음에도 모른 척 아닌 척 덮어주고 지나가던 사람들의 등 뒤에서 아이의 생명이 스러지고 잦아들고 있을 때, 대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건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일상의 작은 조각 사이사이에 이토록 잔인하고 흉폭한 악이 도사리고 있는데, 당신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추모로, 공분으로, 세상이 떠들썩한 사이, 그 조그마한 아이가 버려지듯 묻힌 그 자리엔 꽃과 과자와 장난감이 가득 쌓였다 한다. 이 또한 슬픈 것은 이 고유하고도 귀한 생명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들이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모습에 가려진 채 울고 있을 크고 작은 아이들, 그들을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온 국민이 바라보는 동안 그 커다란 배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나의 아이’를 잃은 엄마 아빠들이 울부짖을 때, 유난 떨지 말라고, 이제 지긋지긋하니 그만 좀 하라며 모진 말로 대못을 박았다. 길을 건너던 아이가 차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아이들이 매일 지나고 건너는 학교 근처를 지날 때 조금 더 조심하며 살펴보자고 법을 바꾸자, 운전자들을 골탕 먹이려는 수작이라며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아이 잃은 부모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돌봐 줄 보호자 없이 남겨졌던 아이들이 배가 고파 라면을 끓이다 화염에 휩싸였다. 복지 사각지대를 운운하며 자극적인 뉴스를 쏟아내고 옮겨 적던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아이들에게, 혹은 비슷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떠올리기도 흉측해 옮겨 적고 싶지 않은 잔혹범은 유유히 감방을 걸어 나와 ‘평범한 일상’을 되찾았다. 그에게 처참하게 짓밟혔던 아이와 가족들은 그를 피해 이사를 가야 했다. 지금 우리가 공분에 휩싸여 있는 이 일 또한 크게 다르지 않겠지. 가해자를 엄벌하자며 갖은 노력을 다 하겠지만, 지금도 어디에선가 두려움 속에 고통당하고 있을 수많은 아이들을 바라보고 손 내밀지는 못하겠지. 우린 그렇게 또 한 명, 또 한 명의 생명을 잃어가겠지.


이제 한껏 무거워진 나의 아이를 품에 안는다. 가만히 볼을 만지고 팔과 다리를 쓸어주며 바라본다. 이 아이에게 보여주고 알려주고 가르쳐주어야 할 세상은, 이 아이 앞에 펼쳐질 평범한 일상이라는 건 어떤 모습일까. 마음이 무겁다. 한 명 한 명의 소중한 아이들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그 생명들이, 평범한 일상을 편안하게 살아낼 수 있도록 지켜내야지. 거룩한 표정과 옛날스러운 단어로 선함과 의로움을 꾸며내지 않도록, 항상 신 앞에 서 있다는 그 마음으로 진솔하게 일상을 살아내는 본을 보여야지. 이 어둡고 무거운 절망감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견뎌내야지. 나의 아이가 다정한 눈빛과 선한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바르게 생각하고 옳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함께 자라나야지. 너무도 작고 보잘것없는 마음이지만, 모든 아이들을 보다 세심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어야지. 악이 평범한 얼굴에 있었듯, 진실하고 선한 마음 또한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곳에 있음을, 그 마음들이 보다 촘촘하게 맞닿을 때 비로소 우리의 아이들을 하나 둘 지켜낼 수 있음을 믿으며, 저 깊고 깊은 절망감의 수렁을 딛고 설 힘을 내어본다.  


‘정인아, 미안해. 우리가 바꿀게.’ 이 말이 한낱 구호로 쉬이 소비되고 잊혀지지 않기를...

작가의 이전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