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터널을 지나는 그대에게
"별이 엄마는 취미가 뭐예요?"
딸아이의 친구 엄마와 처음으로 마주 앉아 차 한 잔을 나누던 날, 한국 사람들이 툭하면 던지는 호구조사 같은 질문을 싫어하는 내가 건넨 질문 뒤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뭐... 저도 참 좋아하는 게 많았는데, 아이들 낳고 키우고 하면서는 딱히 취미 생활이랄 게 없어진 것 같아요. 그럴 여유도 없고... 그나마 좋아하는 건 산에 가는 거였는데, 음..."
그녀가 울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장대비가 내리던 어둑한 아침, 쏟아지는 빗소리에 묻히지도 않을 만큼 터져버린 울음. 정말 슬픔은 같은 결을 알아보기라도 하는 걸까. 가슴에 차오른 한숨을 소리 없이 나누어 흘려보낸다. 습관처럼 앞니가 입술 안쪽을 지긋이 깨문다. 설명하기 전부터 그녀의 슬픔이, 아픔이, 비처럼 나에게 다가와 젖는다.
"실은... 올해 2월에 저희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아빠가 우리 집 앞에 있는 저 산을 좋아하셔서 같이 산책도 다니고 했는데, 아빠가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시고 나니 그 이후로 산을 다시 못 밟겠더라고요."
한 번도 다른 사람 앞에서 이야기해 본 적 없다는 그녀의 감추어진 슬픔이 터져 나오는 순간, 나는 그저 그녀와 같은 속도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천천히 끄덕끄덕, 굳게 다문 입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풀렸다를 반복했다. 내 눈에도 금세 눈물이 차올랐지만 자연스럽게 꿀꺽 삼켜버렸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내 감정보다 앞서가는 상대의 눈물은 결코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이미 스무 해 전부터, 너무도 일찍 배워버렸다.
또렷한 정신으로 스스로 연명치료 거부서에 서명을 하신 그녀의 아버지는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딸들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한다. 떠나보내는 자식의 입장에선 최대한의 치료에 매달리지 않는 아버지의 결정이 야속하기도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토록 단호한 선택을 돌이킬 방법은 없었다고. 예상치도 못할 만큼 너무 빠르게 다가온 이별 앞에서 아버지와 헤어지는 모든 순간을 오롯이 새겨 넣은 그녀의 이야기는 짙은 슬픔과 아픔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사실은 너무도 아름답게 반짝였다. 부러울 만큼.
지금의 내 나이와 얼마 차이도 나지 않는 젊은 나이에, 참으로 건강하고 든든하던 나의 아빠는 마치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심장마비로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말 그대로 기가 막힌 그 상황에서 나를 위로했던 건, 아빠가 나에게 늙고 병들고 약해진 모습이 아니라 크고 당당하고 건강한 멋진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이었다. 동시에 가장 아쉬운 것은 삶의 끝자락에서 얼굴을 맞대고 나눌 수 있는 바로 그 마지막 인사의 부재였다.
슬픔에 무너지지 않게 쌓아 올린 자기 합리화의 성은 때때로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휙 하고 쓰러진다. 그녀가 부러웠다.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아니 어쩌면 평생토록 그녀를 아프게 할 바로 그 순간이 부러웠다.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꺼지는 마지막 순간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며, 어쩌면 좋은 모습만 기억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열아홉 살 나의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어지러이 얽힌 슬픔 앞에 날 것이 되어버린 서로의 마음은 눈물인지 비인지 모를 것에 섞여 하나로 흐르고 있었다.
부모를 잃는다는 건 참으로 개인적인 사건이지만, 내가 먼저 눈을 감지 않는 한 누구나 결국은 겪어내야 하는 인류 공동의 아픔이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나 막상 나의 일이 되지 않고서는 쉽게 떠올릴 수 조차 없는 그저 막연한 어떤 일. 잘 준비가 될 때까지 맞닥뜨리지 않으면 참 좋겠지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홀연히 찾아와 버리고 마는 유일무이한 슬픔. 열아홉 살에 겪은 나에게도, 마흔이 되어 겪은 그녀에게도 어쩌면 똑같은 깊이로 박혀버렸을, 지울 수 없는 지독한 아픔...
이럴 때면 꼭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늘 당당하고 호쾌한 우리 이모, 엄마보다 아홉 살이나 많아 나에겐 '진짜 어른' 같은 우리 이모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나를 보며 "우리 엄마 돌아가셨다? 나 이제 고아 됐다." 농담하듯 웃다가 순간적으로 얼굴이 바삭 일그러지며 섧디 섧게 울음을 쏟아내 버리던 순간. 쉰을 넘긴 어른에게도 엄마와의 이별은, 부모와의 작별은 이토록 아프고 슬프고 허망하다는 걸, 아픈 할머니를 보며 분명 마음의 준비를 몇 번이고 했을 텐데도 이는 결코 준비될 수 없는 마음이라는 걸 또렷이 알게 해 준, 결코 잊을 수 없는 내 인생의 한 장면이다.
'호상(好喪)'이란 얼마나 무심한 말인가. 오랜 세월만큼이나 서로의 안에 더욱 깊이 뿌리내렸을 존재의 의미 앞에서 다시 마주 볼 수 없고 손 잡을 수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어찌 아쉽고 슬프지 않을 수 있을까. 함께 살아온 시간보다 홀로 남겨진 시간을 더 길게 살아내야 하는 자들은 짊어질 수 없을 무게의 아쉬움까지 견뎌내야겠지. 어느 쪽이 되었든 결국 산다는 것은 어쩌면 매 순간 이별을 겪어내고 슬픔을 견뎌내며 죽음을 준비하는 것일지도. 누구나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눈물자국 하나씩은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 모든 인간의 숙명일지도. 이 모든 것을 내 삶으로 하나하나 겪어내며 나는 늘 죽음을 곁에 두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이들의 죽음도 내 이야기가 되어 가슴에 스며들었다. 깊이 공감하되 호들갑 떨지 않고 가만히 들어주게 되었고, 함께 숨을 몰아쉬되 쉽게 울음을 터뜨리지 않게 되었다.
"어머, 내가 왜 이러지. 아니 취미를 묻는 질문에 이런 얘기가 터져 나와 버렸네요. 봄이 엄마한테는 이상하게 제 얘기를 다 하게 되네요." 같은 슬픔의 결을 확인한 우리는 그렁그렁 눈물을 잔뜩 매단 채로 웃어버렸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 바로 그 적당한 거리에 있는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를 받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지러운 말보다 뭉근한 침묵이 더 많은 마음을 실어 날랐다.
비가 그치고 은근히 선선한 기운을 실은 바람이 슬며시 불어온다. 다시 저 높이 떠오른 한낮의 해는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는 듯하지만 그 기세가 지난 주만 못하다. 이렇게 또 하루가 흐르고 한 계절이 지나며 슬픔은 익숙해지고 그리움은 일상에 녹아들겠지. 이제는 좀 잊었나 싶다가도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이 쉭 마음을 할퀴고 지나가기도 할 테고. 그렇게 몇 번의 계절을 돌고 또 돌다 보면 잊는 날 웃는 날이 많아지겠지. 새롭게 사랑을 심은 자리마다 새 생명이 움트고 자라나는 것을 보며, 영원히 아물지 않을 것만 같던 이 상처에도 결국은 새 살이 돋는다는 걸 겪어내는 중인 나는, 내가 지나온 모든 계절을 담은 가장 슬프고도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위로를, 그리고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이미 이 유일무이한 슬픔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그대에게도, 혹은 언젠가 마주하고 겪어낼 당신에게도.
죽음이 어디서 우리를 기다리는지 알 수 없으니, 어디서든 죽음을 기다리자.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은 자유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생명의 상실이 나쁜 것만은 아님을 깨달은 사람에게 인생에서 나쁜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죽는 법을 알면 모든 예속과 속박에서 벗어난다.
-몽테뉴 <수상록> 1권 19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