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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봄 Aug 24. 2021

비가(悲歌)

슬픈 기억과 짙은 설움, 그리고 서늘한 그리움


비는 언제나 슬픈 기억을 동반한다.  


아득히 멀어지던 시간들이  

고인 웅덩이마다 둥글게 또 둥글게 떠오른다.  


빗물이 슬며시 발끝을 적신다.

그리움이 눈물로 후두둑 떨어진다.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 당신을 추억하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 비를 동반한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던

그 어느 시절

소리 없이 읊조리던 노랫말들이


물기 잔뜩 머금은 바람을 타고  

가슴에 와 서늘하게 젖는다.


비가

내린다.






꿈이었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난 새벽, 커튼을 슬며시 들춰보니 꿈에서처럼 세찬 빗줄기가 쏟아진다. 물안개처럼 뿌옇게 세상을 가득 메운 습기에 숨이 막혀오는 것만 같다. 몇 년만이었을까, 꿈에서라도 그를 마주한 것이. 쿵쾅쿵쾅 심장이 뛸 때마다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온다. 어둠 속에 덩그러니 앉아 숨을 몰아쉰다. 적막한 공기를 가르지 못한 숨이 툭,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는다. 설운 눈물이 흉곽 저 아래에서부터 북받쳐 오른다.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홀연히 사라진 사람, 이제는 얼굴조차 희미해져 그리워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다 지난 일이라고, 이제는 다 잊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나는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꿈속에서조차 온전히 내 것이지 못했던, 늘 곁에 있었으나 한 번도 함께이지 못했던 그를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인정해야지, 더 이상 내가 이겨낼 수 없는 마음이라는 걸, 살아가는 모든 순간 가슴에 묻고 그리워하며 소진해야 하는 생이라는 걸.


창밖으로 손을 뻗어 비를 잡는다. 펼친 손바닥 위로 눈물이 내린다. 서늘한 그리움에 눈이 젖는다. 당신도  비를 보고 있을까.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쉬고 . 당신도 가끔씩은 나를 그리워할까. 나는 당신에게 어떤 순간이었을까.  생이 다하기 , 우린 우연이라도  번쯤 마주할  있을까.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라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있을까.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새벽의 짙은 어둠에 손끝이 파르르 떨려온다. 바람이 분다. 가늘어지던 빗줄기가 뿌옇게 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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