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기억과 짙은 설움, 그리고 서늘한 그리움
비는 언제나 슬픈 기억을 동반한다.
아득히 멀어지던 시간들이
고인 웅덩이마다 둥글게 또 둥글게 떠오른다.
빗물이 슬며시 발끝을 적신다.
그리움이 눈물로 후두둑 떨어진다.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 당신을 추억하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 비를 동반한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던
그 어느 시절
소리 없이 읊조리던 노랫말들이
물기 잔뜩 머금은 바람을 타고
가슴에 와 서늘하게 젖는다.
비가
내린다.
꿈이었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난 새벽, 커튼을 슬며시 들춰보니 꿈에서처럼 세찬 빗줄기가 쏟아진다. 물안개처럼 뿌옇게 세상을 가득 메운 습기에 숨이 막혀오는 것만 같다. 몇 년만이었을까, 꿈에서라도 그를 마주한 것이. 쿵쾅쿵쾅 심장이 뛸 때마다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온다. 어둠 속에 덩그러니 앉아 숨을 몰아쉰다. 적막한 공기를 가르지 못한 숨이 툭,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는다. 설운 눈물이 흉곽 저 아래에서부터 북받쳐 오른다.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홀연히 사라진 사람, 이제는 얼굴조차 희미해져 그리워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다 지난 일이라고, 이제는 다 잊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나는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꿈속에서조차 온전히 내 것이지 못했던, 늘 곁에 있었으나 한 번도 함께이지 못했던 그를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인정해야지, 더 이상 내가 이겨낼 수 없는 마음이라는 걸, 살아가는 모든 순간 가슴에 묻고 그리워하며 소진해야 하는 생이라는 걸.
창밖으로 손을 뻗어 비를 잡는다. 펼친 손바닥 위로 눈물이 내린다. 서늘한 그리움에 눈이 젖는다. 당신도 이 비를 보고 있을까.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을까. 당신도 가끔씩은 나를 그리워할까. 나는 당신에게 어떤 순간이었을까. 이 생이 다하기 전, 우린 우연이라도 한 번쯤 마주할 수 있을까.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라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이 새벽의 짙은 어둠에 손끝이 파르르 떨려온다. 바람이 분다. 가늘어지던 빗줄기가 뿌옇게 번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