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목소리 76
할아버지 세 분이 정류장에서 한참 실랑이를 벌인 듯하다. 버스에 올라선 두 분이 자리에 앉기도 전부터 버스 정류장에 남겨진 한 분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같은 버스를 타자고 했건만 기어코 혼자 다른 버스를 타겠다는 할아버지만 남겨진 것이다. 그분은 졸지에 옹고집쟁이가 되어버린다.
친구들과 놀러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휴게소에 커다란 뽑기 기계가 줄을 지어 늘어선 곳이 있었는데, 친구들은 이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한창 흥이 올라있던 터라한 명이 관심을 보이자 너도나도 덩달아 달라붙은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무렵에도 나는 도통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 친구들이 뽑기 하는 것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서로 돈을 넣고 열심히 기계를 돌려대던 친구들은 저들 뽑고 싶은 걸 하나씩 뽑아 들더니 나에게도 한 판 하라고 권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볍게 거절을 했는데, 내가 거절하자 오기가 생긴 건지 친구들이 더 강하게 권하고, 나는 그걸 또 거절하고를 반복하다 결국 감정싸움을 벌였다. 한창흥이 올라있던 무리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됐고, 어찌어찌 다시 여행길에 올랐지만 좀체 감정싸움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은 채 1박 2일을 보내야 했다.
지금에서야 나도 뭐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적당한 선에서 장단을 맞춰 주리라 생각하고, 친구들도 그렇게 강권하진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때는 무슨 오기가 붙은 건지 좀처럼 한쪽이 양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나는 졸지에 고집쟁이가 되어 버렸다. 사실 내가 고집이 세다는 걸 딱히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나만 우겨서야 대립이 생겼을 리 없는데, 내가 한 명이란 이유로 나만 고집쟁이가 되어야 하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게다가 내가 어느 시점에 그들의 강권을 못 이겨 뽑기를 했더라도 내가 고집쟁이의 낙인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을 접하게 되면 여전히 소신과 고집의 경계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권하는 입장이라면 한 번 물어보고 돌아서리라 생각하지만 그것이 늘 마음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상대가 재차 삼차 권해 올 때의 난감함도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고집보다는 소신이라는 시각을 좀 더 자주 꺼내어 쓰면 어떨까 생각해볼 뿐이다.
그림 / 정아 (https://www.instagram.com/lint3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