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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군 Nov 17. 2018

문지방을 넘다

서류 정리함을 만들며

꾸욱~


손끝에 힘을 주어 작은 조각을 틈에 맞춰 밀어 넣는다. 마지막 조각을 끼워 맞춘 뒤 형태를 갖춘 녀석을 좌우로 흔들어본다.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옆면이 위아래 판을 꼭 끌어안았다. 너무 빡빡하지도 않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연결된 완성품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완성이다. 홈을 새로 파고, 이음매 크기를 여러 차례 바꿨다. 형태를 갖춘 녀석이 딱히 초면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완성되었다고 이리저리 돌려보니 내가 만들었지만, 썩 반갑다.

웬만한 문서는 출력해서 보는 성격이라 언제 프린트했는지 알 수 없는 A4 용지가 늘 책상 위를 채웠다. 키보드에 손을 올리기 전 책상 위를 쓸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싫었다. 매번 책상에 처음 앉는 순간 이 녀석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순간순간, 그러나 꽤 오랜 기간에 걸쳐 나는 녀석이 책상 위에 자리 잡는 순간을 생각했다. 눈앞에 어지러이 펼쳐진 A4를 집어삼킨 녀석을 생각했다.


나의 A4를 집어 삼켜랏~!


만남은 퍽 갑작스러웠다. 마음을 굳게 먹고 말고 할 새도 없이 도면을 완성했고, 그로부터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형태를 갖췄다. 오랫동안 구상이란 이름으로 마음 쓰던 시간이 무색했다. 내가 이 형태를 마주하기 위해 쏟아야 했던 시간은 길게 잡아도 하루를 채우기 어려웠다.

쉬웠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한두 번 다른 형태를 잡아보려 시간을 쏟기도 했고, 미루고 미루며 형태를 마음속에 그렸기에 과정이 단순했다. 다만, 마음속에 형상이 자리 잡고도 실제로 제작하기까지 하염없는 기다림이 있었을 뿐이다.


떠남에 있어 가장 어려운 순간은 문지방을 넘는 순간이라는 말이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다. 사실 시작은 시작일 뿐이고, 문지방을 넘어도 가야 할 길은 구만리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문지방을 넘으면, 시작이란 이름을 넘어서면 굳이 마음을 굳게 먹지 않아도 새로운 걸음을 딛게 된다. 그렇게 디딘 걸음이 어제와는 다른 곳으로 나를 이끈다.

염두에 둔 자리에 녀석을 밀어 넣으며 무엇이 나를 문지방 앞에서 서성이게 했는지 생각해본다. 수없이 넘나들었던 그곳에서 왜 어제도, 그제도 그렇게 맴돌았는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오늘도 넘지 못한 문턱은 없는지 되물어본다. 서성임이 줄어들 때까지 계속해서 되물어본다.


Photo by Warren Wo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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