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L 그리고 우리
“뾱뾱이 이거 말고 종이로 된 친환경 제품 있는데, 그거 쓰는 건 어때?”
완충재에 친환경 제품이 있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다. 아니 애당초 외형과 비용 외의 관점으로 포장 재료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친환경’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엔 그런 것까지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 생각을 한 번 삼킨다. 일단 어떤 제품인지 확인하고 판단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L은 약속대로 집에 있던 친환경 완충재의 사진을 보내줬다. 사진만으로는 정확히 어떤 제품인지 알기 어려웠지만, 늘 그러하듯 구글신은 정답을 알고 있었다. 제품의 가격과 규격을 확인하고 대충 비용을 계산했다. 한 제품을 포장하는데, 뾱뾱이에 비해 4배 정도의 비용이 예상된다. 1원을 줄여도 션찮을 포장을 4배의 비용을 들일 것인가가 새로운 질문으로 떠올랐다. 포장지를 친환경으로 바꾼다고 티가 날 것은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그런 걸 어필할 상황도 아니다. 반쯤 반대 의사를 마음에 담고 L과 나눌 이야기를 생각했다. L을 생각했다.
나는 그랬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많이 쓰지 않았다. 가끔 필요에 따라 손을 보태기도 했지만, 내 손이 닿아서 티도 안 날 일에 마음 쓰지 못했다. 가끔은 나의 편의를 위해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L은 나와는 달랐다. 혼자만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일에도 마음을 쏟았다. 가끔은 그런 모습이 과해 보였다. 그렇다고 L이 뭐 대단한 사회 운동을 하거나, 엄청난 행동가인 것은 아니었다. 가끔 질문을 했고, 종종 마음을 쏟았다. 사소한 차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나와는 달랐다.
L은 나와는 달리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반대하면 L은 기꺼이 자신의 제안을 거둘 것 같았다. 아쉬워한다면 비용이 문제이니 추후 다시 생각해보자고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하지 않는 것은 쉽고, 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L의 제안을 다시 떠올렸다. 그런 생각을 하는 L을 떠올렸다. 나와는 달랐고, 그 다름이 마음에 걸렸다. 이번 결정이 나의 방식대로 결론을 맺으면 나는 또다시 ‘그런 건 생각도 못해본 사람’으로 돌아갈 것이 뻔했다. 나의 주장이 강한 만큼 ‘우리’의 일은 ‘나’의 가치를 중심으로 굴러갈 것 같았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돌아가더라도 나에게 ‘친환경 완충재’를 제안했던 L의 관심이 사라질 리도 만무했다. 다만 ‘우리의 일’에 등장하지 않을 뿐.
L과 함께 일을 시작하면서 이것이 ‘우리의 일’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막연히 우리의 일에는 ‘우리의 가치’가 담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L의 제안은 ‘어떻게’가 없던 나의 막연함을 파고드는 질문이 되었다. 우리가 이렇게 다를 경우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가치’를 만들어 ‘우리의 일’에 담을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L의 제안에 따라 친환경 포장 재료를 사용하기로 했다. 뾱뾱이만이 아니라 발포지도 환경적으로 더 나은 제품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 사용하기로 했다. 비록 비용은 조금 증가하겠지만 이 결정이 ‘우리의 가치’를 만드는데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L과 나는 다르다. 나라면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들을 생각하고, 그런 생각에서 파생된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 나는 그런 L의 새로운 관점이 ‘우리의 일’에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L과 함께 하기를 선택한, 그리고 그 선택이 옳으리라 믿는 이유이다. 그러니 그의 관점과 가치를 나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포장 재료는 쉬운 선택이었다. 비용의 증가도 그리 크지 않다. 분명 더 크고 중요한 결정에서 L과 나의 관점이 부딪히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꽤 자주 혹은 꽤 격렬하게. 그때도 부디 L과 나의 가치를 잘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길 바란다. 우리의 가치를 잘 모으려는 생각이 여전하길 바란다.